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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Bangladeshi)

카지 나즈룰 이슬람(Kazi Nazrul Islam: 1899-1976)

벵갈의 가장 위대한 시인
인도의 서벵갈주 부르드완의 추룰리아 마을 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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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이맘(이슬람교 성직자)이었다. 아직 학생이었을 때(1916년), 새롭게 편성된 벵갈 연대에 가입했다. 휴전이 되기 전에 몇 달간 메소포타미아에서 근무. 그가 속한 연대는 전투를 할 기회는 없었다. 그의 첫 번째 중요한 두 시 Pralayollas (Exhilaration at the Final Dissolution)와 Vidroho (Rebellion)가 1922년에 발표되었다. 첫 번째 시집 Agnivina (The lute of fire)도 그 해가 가지 전에 나왔다. 그 책은 인도에서 결코 경험해보지 못한 열광적인 찬사를 받았다. 그후 그는 코롤 그룹에 가담해서 재치있고 날카로운 운문과 풍부한 노랫말들을 썼다. 그는 스무 권이 넘는 시집과 소설집, 희곡집을 펴냈다.


휴마윤 아메드(Humayun Ahmed: 1948- )

방글라데시의 대표적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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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고 수수한 언어로 벵갈어를 사용하는 현대 남녀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능력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벵갈의 중산층을 묘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첫번째 소설 Sankhanila Karagara(1972)은 방글라데시 독자와 비평가들 사이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 이후 그는 백 권 이상의 소설을 발표했다. 그 대부분은 텔레비젼 드람나 연극으로 만들어졌다. 다카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고, 미국 노스다코다 주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 한때 다카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하기도 했다. 미국 아이오와 창작캠프에 참가. 최근에는 영화 제작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의 영화 Agunera Parasamani는 여덟 개 분야에서 국가영화상을 수상했다. 그밖에 방글라데시 아카데미상(1981), 에쿠세이 파닥상(1994) 등도 수상했다.


니르말렌두 군(Nirmalendu Goon: 1945- )

현대 방글라데시의 가장 탁월한 시인 중 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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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시집은 1970년에 출간되었다. 그 이후 시집 45권, 산문집 20권을 펴냈다. 뚜렷한 빈곤과 마찬가지로 신흥 중산층이 갑자기 성장한 1960년대에 등장한 세대 작가군에 속한다. 당대의 갈등과 대립이 군과 그 시대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인간정신에 대한 믿음, 그리고 자유에 대한 사랑이 그의 많은 시의 바탕을 이룬다. 방글라데시 아카데미상(1982) 에쿠세이 파닥상(2001)을 수상했다. 1982년 베트남 호치민시에서 열린 제9차 아프로아시아작가연맹 회의와 2000년 인도 델리에서 열린 작가회의에 방글라데시를 대표하여 참가한 바 있다.


셀리나 호싸인(Selina Hossain: 1947- )

방글라데시의 가장 유명한 여성 작가 중 한 명



21편의 장편소설, 일곱 권의 단편집, 네 권의 산문집, 네 권의 아동문학집 등을 펴냈다. 그녀의 작품은 싸우는 대중의 삶의 순환적 사이클과 더불어 현대 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위기에 대한 답변이다. 그녀의 소설 중 몇 편이 인도의 지방어와 불어, 노어, 영어 등으로 번역되었다. 방글라 아카데미상(1980), 알라올 푸라시카르상(1981) 등 많은 상을 수상했다. 1994-5년에는 소설 Gayatri Sandhya로 포드 장학기금을 받았다. 현재 다카르에 있는 방글라 아카데미의 책임자로 근무하고 있다.


샴수르 라흐만(Shamsur Rahman: 1929- )

방글라데시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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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권 이상의 시집을 펴낸 그는 방글라데시의 가장 위대한 시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벵갈어 시문학의 지형과 기후를 끊임없이 변화하게 한 일련의 작품들을 생산했으며, 우리가 지니지 못한 언어를 주엇다"는 평을 받는다. 한편으로는 "전통에 뿌리를 두면서도 우리 시대의 언어를 결코 외면하지 않았다"는 평가도 받는다. 다카대학에서 영문학 최우등 학위를 받았으며, 그후 오랫동안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방글라 아카데미상(1969)을 비롯하여 여러 개의 상을 수상했다.


수피아 카말(Sufia Kamal: 1911-1999)

방글라데시의 자유의 투사이며 시인, 여성계몽운동가
바리살에서 저명한 변호사의 외동딸로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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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라는 이유로 정규 교육은 거부당했으나, 삼촌의 서재에서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공부했다. 11살의 나이로 결혼. 남편이 죽은 뒤 재혼했다. 14세때 첫번째 시집을 펴냈다. 1952년부터 사회경제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 활동하기 시작했다. 라빈드라 상기트가 금지된 1961년부터는 훨씬 격렬하게 활동했다. 1960년대에는 아유브 칸 장군의 정권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였다. 1971년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을 위한 해방전쟁이 벌어지자, 방글라데시 마힐라 파리샤드당의 당수로 일했다. 종교적 신심이 두터웠지만, 원리주의는 거부했다. 그로 인해 이슬람 과격단체로부터 공격 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하싼 하피주르 라흐만(Hasan Hafizur Rahman:1931- )

방글라데시의 시인
인도의 자말푸르 출생
언어운동에 종사
해방전쟁의 역사에 관한 몇 권의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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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 자파르 오바이둘라흐(Abu Zafar Obaidullah: 1934- 2002)

방글라데시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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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 문학 조류에 고전적 전통을 가장 잘 전달한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다카대학 영문과에서 가장 젊은 강사로 근무하기도 한 그는 농업과 지역개발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 결과 1982년에 농업관개장관직을 맡았다. 1984년에는 워싱턴 주재 대사 역임. 시인으로서 그는 에쿠세이 파닥상 수상했으며 장편 서사시를 포함해 여러 권의 시집을 펴냈다.


샹카 고쉬(Sankha Ghosh: 1932- )

방글라데시의 시인이며 문학평론가
현재 방글라데시령인 챤드푸르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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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인도 캘커타의 프레지던시 대학에서 벵갈어를 전공, 학사 학위를, 1954년 캘커타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캘커타의 방가바시대학을 비롯 여러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1992년 자댜푸르대학에서 은퇴. 1967-8년에 미국 아이오와대학 창작프로그램에 참가. 16권의 시집을 포함해 60여 권의 저술이 있다. Narsingh Das Puraskar (1977, for muurkha ba.Do, saamaajik naY), Akademi Award (1977, for baabarer praarthanaa), Rabindra-Puraskar (1989, for dhUm legechhe hR^it.hkamale), Akademi Award for translation (1999, for translation of raktakalyaaN) 등 여러 상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은 영어를 비롯해 힌디어, 마라티어, 푼잡어, 아셈어, 말라얌어 등으로 번역되었다.


아틴 반디오파드야이(Sufia Kamal: 1911-1999)

방글라데시의 소설가
현대 벵갈리어문학의 대표적인 작가
다카에서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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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에 대한 생생한 묘사, 상황과 주인공에 대한 예리한 분석 등은 그의 소설에 다큐멘타리적인 특질을 부여한다. 대표작 Nilakantha pakhira khonje 은 자신의 체험담을 그린 것이다. 1947년 벵갈의 분리와 더불어 일어났던 폭동사태 기간 힌두와 무슬림 사이의 갈등을 묘사한 것 중 가장 통렬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타스밀라 나스린(Taslima Nasrin: 1962- )

방글라데시의 작가
동파키스탄 미멘싱에서 무슬림 가문의 딸로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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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는 1971년 방글라데시로 독립되었다. 매우 엄격하고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란 그녀는 과학을 잘했으면서도 문학을 무척 좋아했다. 15세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 나중에는 센주티라는 문학잡지의 편집인도 지냈다.(1978-1983) 의과대학을 다닐 때 문학써클을 결성하기도 했다. 1984년 졸업후 8년동안 병원 근무. 1986년 첫번째 시집을 출간. 1989년에 펴낸 두번째 시집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때부터 각종 매체에 주로 억압받는 여성에 대한 칼럼도 쓰기 시작. 남성의 지배에 대해 타협하지 않는 태도로 글을 써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1992년 칼럼집 Nirbachito Kolam으로 인도의 웨스트벵갈에서 주는 아난다문학상을 받았다. 방글라데시인으로서는 최초의 수상자였다. 많은 작가들이 그녀의 수상을 질시햇으나, 또 많은 지식인들이 그녀의 수상을 적극 지지했다. 1990년부터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그녀에 대한 항의 캠페인을 전개했다. 그녀가 기고하는 신문 가판대 등을 불태우기도 했다. 생명에 대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중단은커녕 오히려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그리하여 근본주의자 폭도들로부터 몇 차례나 공격을 받기도 햇다. 1993년에는 이슬람 전사들이라는 근본주의 단체가 그녀에게 파트와를 선언, 공개적인 현상금까지 걸었다. 그녀의 주장은 "종교는 휴매니즘의 다른 이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의 율법 대신 여성들이 평등과 정의의 대접을 받는 공평한 시민코드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정부는 근본주의자들을 달래기보다 그녀에게 글을 포기하라며 압력을 가했다. 결국 그녀는 공공의 안녕을 저해했다는 이유로 두달 간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극소수의 작가들만이 그녀을 보호해 주었다. 그후 국제펜클럽과 인권단체들이 그녀를 지원했다. 결국 그녀는 오랜 도피 생활끝에 고국을 떠나야 했다. 1998년 어머니가 위독해서 입국했으나 근본주의자들은 다시 한번 살해하겠다고 협박, 다시 고국을 등져야 했다. 어머니가 죽었을 때 모스크에서 그녀를 위해 장레식을 치러준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타스밀라는 현재 유럽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다. 25권의 시집, 에세이집, 장편소설, 단편집 등을 벵갈어로 펴냈다. 그중 몇 권은 스무 개 정도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고국에 돌아가게 해달라는 그녀의 탄원은 수 차례 기각되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현재 그녀의 책들이 판금된 상태다.

※ 이하 국적을 다시 한번 확인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