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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INDONESIA)

 

 

▒ 인도네시아 문학 :

오랫동안 네덜란드 식민지정부의 지배하에 있었던 인도네시아에서는 1920년대의 민족적 각성과 함께 근대문학이 성립한 것으로 생각된다. 최초의 본격적인 문예운동은 서유럽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에 의해서, 잡지 《신작가(新作家)》를 중심으로 일어났으며 그 동안 독립전쟁(무력혁명) 시대에 수많은 뛰어난 시인·작가를 배출하여 <45년세대(世代)> 문학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그후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문학세계에도 뚜렷이 나타나 단편소설의 잡지가 문학의 중심을 이룬 시대로부터 66년의 신체제(新體制) 이후 문학은 또 다시 새로운 기풍을 보여 젊은 시인·작가가 등장하게 되었다.

현대 인도네시아문학에서 특기할 점은 타크디르 알리샤바나·프람디아 아난타 투르·모프타르 루비스 같은 사회파 거물작가들이 장편소설을 계속 발표하고 있다는 사실과, 민족운동가의 자서전·회상록이 수없이 출간되고 있다는 점, 상업주의에 편승한 것이기는 하지만 대중소설, 특히 여성 취향의 대중소설이 젊은 세대의 독자층을 개척하고 있는 사실 등이다.(심마니 백과사전)

▒ 인도네시아 식민통치 시대와 신질서 시대 문학에 나타난 민족의식, 한국외대 외국문학연구소 프로젝트

▒ 인도네시아의 새로운 작가들(영어)


목타르 루비스(Mochtar Lubis, 1922- )

작가이며 언론인
+ 자카르타의 황혼 외(현암사, 1977)
+ 단편 [밤나무골], [자카르타] 수록(한국외국어대 출판부, 1996)
+ 정순희, 목타르 루비스의 작품에 나타난 사회비판의식과 인도주의 - <자카르타의 황혼>과 <끝없는 길>을 중심으로, 어문논집 제2집(1987.2), 부산외대 어문학연구소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47년 <안타라> 통신을 창설하며 언론계에 투신. 1949년 일간지 <인도네시아 라야>를 발행. 여기에 수카르노 독재정권을 맹렬히 비판하는 글을 발표하기 시작. 1952년에 장편소설 [끝없는 길]을 발표, 인도네시아 국민문화상 수상. 1956년 반혁명분자로 낙인찍히며 투옥당함. 감옥에서 대표작인 장편소설『자카르타의 황혼』(현암사)을 집필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인도네시아 정치인·언론인·공무원·기업가들의 부패상을 폭로하고, 그와 대조적으로 하층민들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이 작품은 인도네시아에서 출판되지 못하고 영국에서 최초로 출간되었는데, 이때부터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는 이 작품 완성 후에도 9년간 투옥과 연금 생활을 거듭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종군기자로 우리나라에 왔으며, 그 경험을 단편소설 [밤나무골]에 반영하기도 했다. 1958년 막사이사이상 수상.


뿌라무디아 아난따 또르(Pramoedya Ananta Toer, 줄여서 쁘람, 1925- )

인도네시아가 낳은 세계적인 작가
+ 인도네시아의 양심 프라무디아 아난타 투르, 위대한 아시아, 황금가지, 2003
+ 고영훈: 낯설지 않은 이방인-쁘라무디아의 삶과 문학, 세계의 소설가 1, 한국외대 출판부(한글)
+ 관련 사이트(영어)
+ 에세이/ 문학, 검열, 국가(영어)

1947년 네덜란드군에 저항하다가 2년간 옥고를 치른 것을 필두로, 사회운동에 적극 가담하여 평생 17년이 넘는 영어 생활을 감수한다. 그는 공산당 후원으로 개최된 국민문화동맹 연합대회에 참가한 바가 있고, 1965년에는 공산당 반란사건에 연루되어 섬에 귀양살이를 가 중노동에 시달리다가 14년 만에 풀려났다. 그 이후 정치적인 색채가 없는 소설을 냈지만 이것마저 판매가 금지된,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저항작가. 1995년에 막사이사이 상을 수상했다. 대표작으로 대부분 감옥이나 유배지에서 집필한 [게릴라 가족](1950), [추적](1950), [인간의 대지] 4부작 등이 있다.

[조국이여 조국이여]는 그의 대표작이자 인도네시아 국가 문학상 수상작이며 1982년 노벨 문학상 후보작이기도 했다. 인도네시아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투쟁하다가 희생당한 가족의 결연한 생애를 그린 이 작품은, 인도네시아 문학의 최고봉으로 기록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영어, 독일어, 중국어, 네덜란드어, 러시아어, 한국어 등으로 번역되어 세계가 격찬한 문제 작품이다.


렌드라(W.S. Rendra: 1935- )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저항시인이자 극작가
중부 자바섬 솔로에서 태생
+ 시: 이 세상의 노래
+ 시집: 분노한 세상(전예원, 1987)

그는 미국의 하바드대학에서 공부했다. 1950년부터 인도네시아와 국제적인 잡지들에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그의 작품들은 독어, 일어, 영어, 산스크리트어, 우르드어 등으로 번역되었다. 1974년 학생시위가 전국적으로 퍼져나가자 수하르토는 즉각 이 운동을 탄압했다. 이때 수많은 학생과 지식인이 투옥되었다. 렌드라는 이 당시 시와 희곡작품을 통해 가장 우뚝한 반정부인사로 떠올랐다. 그의 연극은 수많은 군중을 끌어들였다.

그의 시는 중산층과 빈민 계급 사이에 널리 퍼져있던 소외 감정을 반영했다. 비슷한 정치적 이력을 지닌 뿌라무디아가 신화에서 소재를 취했다면, 렌드라의 작품들은 아름답고 기민한 정치적 풍자를 주로 담아냈다.


우마르 카얌(Umar Kayam, 1932-2002)

인도네시아의 소설가
+ 정영림 번역 소설: 스리 수마라, 바욱편지 외, [자카르타](한국외대 출판부, 1996)
+ The Soul of Indonesia: A Cultural Jouney by Umar Kayam & Harri Peccinotti, Baton rouge, Louisiana State Univ. Press, 1985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작가로 유명하다. 그는 1965년 인도네시아 공산당이 권력을 차지할 목적으로 일으킨 반란사건이 수하르토에 의해 강압적으로 진압될 때, 당사자들의 가족이 겪는 아픔과 고통을 용기있게 고발하는 작품을 여러 편 발표했다. 1997년 족자카르타의 가쟈 마다 대학 교수직을 은퇴했다. 그의 소설은 독일어 등으로 번역되기도 했다.


뿌뚜 오카 수칸타(SUKANTA , Putu Oka: 1939- )

현대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시인이자 소설가



인도네시아 전통의학재단 창립자이며 에이즈 치료에 대체의약을 사용하는 점에서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대체의학과 인권문제, 인도네시아 문학 등에 대해서 국내외적으로 많은 강연활동도 전개하고 있다. 이것들은 서로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 같지만, 실은 1998년에야 종식된 인도네시아의 오랜 군부독재 통치의 억압을 뚫고 나타난 몇 가지 긍정적인 것들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발리 출생. 인도네시아 군부정권이 수많은 사람들을 공산당원, 혹은 공산당 동조자라고 몰아부치던 무렵인 1965년, 그는 젊은 시인이었다. 그후 오랜 기간동안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재판도 없이 구속되고 고문을 받고 살해당했다. 그 역시 한 사람의 젊은 수감자로서 이런 상황을 맞이해야 했다. 감옥에서 그는 옆방의 한의사를 통해 의학을 공부했다. 감옥에서 그는 집필이 금지된 상태였다. 1976년 10년만에 석방된 그는 연금 상태에 놓였고, 그의 시는 판매 금지를 당했다. 그럼에도 그는 줄기차게 시를 썼다. 1989년 그는 동료 정치범 출신들과 함께 전통의학재단을 설립했지만, 당국은 그 활동도 금지시켰다. 그렇지만 그는 연구와 치료 활동을 계속, 현재 인도네시아 자연요법협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시집과 소설집 등 많은 저서를 펴냈다. 독일어 문학 번역서도 펴냈다.


뿌뚜 위자야(Putu Wijaya: 1944- )

소설가이자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극작가이며 연출가
발이 태생
+ 정영림 번역 단편소설: 편지 한 통, [자카르타](한국외대 출판부, 1996)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 족자카르타대학에서 법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1969년 자카르타로 건너가 시사주간지 템포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1971년 극단 만디리를 창단했다. 이제까지 천 편이 넘는 단편, 40권이 넘는 장편소설과 희곡, 그리고 많은 시나리오와 영화, 드라마 대본 등을 발표,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왕성한 창작욕을 발휘하는 작가로 정평이 나있다. 각종 수상 경력도 화려하며, 그의 작품들은 네덜란드어, 영어, 일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타이어, 독일어 등으로 번역되었다.


세노 구미라 아지다르마(SENO GUMIRA AJIDARMA, 1958- )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신세대 작가
+ 단편소설: And the Dervish passed(영어)
+ 동티모르의 비극 증언기(영어)

1990년대에 등장한 신인으로 가장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처음에는 시를 주로 썼으나 1993년 이후 단편을 주로 써 잛은 시간 안에 단편집 6권을 펴냈고, 언론에 관한 산문집도 펴냈다. 미국에서 태어나 네살때 인도네시아로 왔다. 1992년 자카르타 예술학원 졸업(영화와 TV 전공). 인도네시아대학에서 철학석사 학위 취득. 이후 저널리스트 겸 작가로 활동 시작. 주간지 [자카르타-자카르타]에서 활동중 동티모르의 학살사건을 비판적으로 다뤄 일시적으로 연금상태에 처해졌다. 그 기간동안 단편소설을 집중적으로 쓰기 시작, 1995년에 [목격]을 영어로 번역 출간했다. 그는 인도네시아 군부에 의해 저질러진 포악한 동티모르 학살사건, 동자바의 이슬람 학자들 살인사건, 자카르타의 급진적 학생운동, 아체 종교봉기 이후의 잔인한 사건들을 정면으로 다뤘다. 이로 인해 그는 동남아시아 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최근에는 희곡도 써서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장편 소설 [죽음, 죽음, 죽음](1975), [한 아기의 죽음](1976), [미라 사토의 노트](1978)과 단편집 [목격](1995)과 몇 권의 시집을 펴냈다. 정치적 사건을 다루더라도 상상력에 기반한 초현실적 기법을 즐긴다.


아마드 토하리(Ahmad Tohari, 1948- )

인도네시아의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
중부 자바섬의 바뉴마스 출생
+ 소설: 카랴민의 미소(영어)

7권의 장편소설, 2권의 단편집, 3권의 정치, 종교 관계 산문집을 펴냈다. 격동의 1960년대 인도네시아의 상황을 그린 3부작 [파룩 계곡의 댄서](1986)가 가장 유명하다. 이밖에 주요 작품으로 [새벽에 별을 쏘다] [무지개 아치] 등이 있다. 그의 작품은 독일어, 일본어, 중국어, 네덜란드어 등으로 번역되었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시골 자바의 문화, 생태, 사회정의 문제 등을 깊이있게 반영하고 있다. 그는 1965년 공산당 봉기의 배경과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살해당한 사건에 대해 쓴 몇 안되는 인도네시아 작가 중 한 사람이다. 남아시아 작가상을 비롯해 많은 상을 수상했고, 아이오아 창작프로그램에도 참가한 바 있다. 이슬람 종교지도자이기도 하다.


아유 우타미(Ayu Utami: 1968 - )

도네시아의 신세대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정치적 활동가
인도네시아 수도인 자카르타 근처의 Bogor 태생


그녀는 Suharto정부가 끝나기도 전에 이미 사회문화운동을 보급하고 현재에는 비판적인 목소리로 민주주의로의 과도기에 동참하고 있는 신세대 인도 작가의 대표적 한 사람이다. 자카르타의 인도네시아대학에서 러시아어와 러시아문학을 공부하고 있는 도중에 각종 신문에 보고서와 에세이의 기고를 시작하였다. 정부로부터 불법이라는 선고를 받은 자유기고가연합의 공동설립자로서 그녀는 1994년 설립을 금지당하고 그녀의 동료 몇몇은 체포되기도 하였다.

그녀는 Siharto정부의 붕괴에 대한 작자불명의 책을 포함한 기고활동을 암암리에 행하였다. 그녀의 데뷔작인 “Saman, 1998"은 단지 작가로서의 그녀의 단순한 약진이 아니었다. 그녀의 책은 재판되고 재판되어 문학의 센세이션으로 기념되었다. ”Saman"은 Suharto가 권좌에서 물러나기 겨우 몇 주 전에 출간되었고 그것은 정치변화에 접근하는 신호탄이 되었다. Utami는 열린 방법으로 사회적 금기를 다루었다. 사랑과 성에 대해 자유롭게 썼고, 무슬림과 크리스천의 어려운 관계 뿐 아니라 중국소수민족에 대한 증오도 주제로 삼았다. 그녀의 소설은 한 가톨릭 신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 신부는 억압된 사람들을 위한 변호를 하고 인도네시아 레지스탕스에 참여하며, 사랑에 빠져 성직자의 길을 포기하고 뉴욕으로 이민을 간다는 줄거리이다. 그와 동시에 한 젊은 여성 집단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녀들은 자만심으로 그녀들의 삶에 대한 결정을 내리고 기존의 성의 역할을 부인한다. 그녀의 시는 인도네시아 특유의 풍부한 억양을 반영하듯이 활기차고 세련됐다. 그녀는 당돌하게도 서술관점들과 지역과 시간단위를 바꿔치기하며, 꿈의 순서와 1990년대의 인도네시아 정치, 사회의 관계들에 대한 설명과 함께 신화들을 연결시킨다. “Saman"은 그녀의 소설의 순환의 첫 번째 부분이며 그 두 번째 부분은 2001에 출판된 ”Larung"이다. 이 두 소설들은 네덜란드에서 출간되었다. 1998년에 “Saman"으로 인도네시아 최고의 소설 상을 받았으며 2000년에는 유명한 Prins Claus Prijs를 네덜란드 정부로부터 수여받았다. 현재 그녀는 자카르타에 살고 있으며 1998년부터 문화잡지 ”Kalam"의 공동 발행인이다.


사르요노(Agus R. Sarjono, 1962- )

Bandung 태생
인도네시아의 젊은 세대 작가들 중 한명


그의 시는 내성과 혁신 그리고 전통으로 특성 지어진 국가의 가치관의 이동을 의미하며 동시에, 민주주의를 갈망한다. 시인이자 출판인이며 중요한 문학지인 “Horizon"의 공동 발행인이며 국립문학회의 회장이고 국립극장의 교육자이기도 한 Sariono는 다양한 토론에서 아주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가 자라고 배웠던 고향은 정치, 예술발전에 대한 토의에 있어서 충분한 소재를 마련해 주었다. 그곳은 무한한 지성의 세계로 가는 통로, 때때로는 어떤 이데올로기운동의 진원지, 또는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감지할 수 있는 곳으로 여겨졌다. Suharto정권하에 “Student Press Unit"의 대표자이고, 이렇게 노출된 입장에서 독재사회에 대한 경각을 일으키기 위한 글들을 쓰고, 무엇을 위해 그 자신을 이렇게 하는지 알고 있는 그를 사람들은 좋아했다. 당시의 정부는 기사검열을 하고, 작가들을 사회에서 매장시키고, 또는 제거해 버리는 것이 가능했다.

Sarijono의 문학과 그의 대중적 견해는 목표물에서 절대 눈을 떼지는 않지만 새로운 줄을 디딜 때는 극도로 조심하는 줄타기 곡예사의 기술과 필적할만하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시들은 위기에 시달리던 19세기에 나온 어느 주요시집에서 거의 언제나 존재한다. 예를 들자면 “Night of a Thousand Moons”, “New Order”, “The country of Shadow”, “The Pepper Land” 등인데 이 제목들은 사람들에게 값진 전통과 과거 이미지의 혼란의 자각인 작업에서도 세대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해 주지만 그와 동시에 현재 과도기의 여러 다양한 영향의 자각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Sajono의 첫 개인작품인 “Discourse Community of Indonesian Literature”와 “Language and Hollands Cookies”가 인도네시아에서 올해에 출판된다. 그는 아시아의 유명한 문학전시회들에서 인도네시아를 대표해왔으며 현재 그는 네덜란드의 Leiden에서 살고 있다.


이브라힘 카다르(Ibrahim Kadir)

인도네시아의 시인



인도네시아 감독의 누그르호의 영화 [시인 A Poet](제5회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작)의 실제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더욱 유명해졌다.1968년 10월 인도네시아에서 7명의 장군이 암살된다. 정부는 공산당이 음모를 꾸몄다고 주장하며 무차별적인 탄압을 시작한다. 공개적이고 합법적인 재판도 없이 살해된 사람들의 숫자는 50만을 넘었고, 누군가는 2백만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수하르토 대통령이 물러나기 전까지 이 비극은 공식적으로 거론되지 못했다. 영화적 재현, 비극적인 현재사를 담기 위해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감독 가린 누그로호가 선택한 방법은 사실과 맥락의 구체적인 분석이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들의 심정을 담아 내는 것이었다. [시인]은 무고하게 체포되었다. 석방된 전통시인 이브라힘 카다르의 기억을 좇는다. 그 곳은 그가 감금되었던 감옥의 내부이며, 죽음의 공포에 절규하며 좌절하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가득하다. 이브라힘 카디르 자신이 직접 등장하는 장면들이 진실의 힘을 더한다면, 사건의 비극성과 민초들의 아품을 담아 내는 것은 인도네시아의 구술문학인 디동이다. 시인의 증언과 디동의 선율을 따라 [시인]은 30년 이상 감금되었던 비극적인 역사를 대중의 기억으로 복원시킨다.


나비스(A. A. Navis: 1924- 2003)

인도네시아의 소설가
서부 수마트라의 파당 판장에서 출생
학교 선생으로 재직하였으며, 지방의회 의원도 역임
+ 단편 [우리 사원의 붕괴], [자카르타] 수록(한국외국어대 출판부, 1996)

1955년 단편 [우리 사원의 붕괴]로 등단한 이후, 서부 수마트라 특유의 모계사회 관습을 작품 속에 제시하여 사라져가는 전통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장편소설 [건기]와 [고독한 아가씨] 등이 있다.(정영림)


이완 시마투팡(Iwan Simatupang : 1928-1970 )

인도네시아의 극작가이자 소설가

+ 소개(영어)

첫번째 아내는 일찍 죽었고, 두번재 아내와는 이혼했다. 경제 능력이 없어서 친척의 방갈로를 빌려 생활했다. 죽으면서 두 아이를 남겼다. 그의 장례식에서 많은 친구들은 작가의 삶이 비극적 낭비였다고 슬퍼했다. 북수마트라 출생. 자바에서 의학 공부를 했다. 독립전쟁 당시 학생으로서 동자바에서 군에 입대했다. 혁명 이후 그 학생군의 상당수가 새 정부의 엘리트 관료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정치나 경제에 거의 관심이 없었다.


시토르 시투모랑(Sitor Situmorang:1948- 1993 )

인도네시아의 시인
+ 소개(영어)


젊은 시절 여행을 많이 했는데 이것이 그의 작품에 크게 반영되었다. 저널리스트로도 활약했고, 문화교육부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국립연극아카데미 강사를 지냈다. 1960년대 초반에 그는 사회참여 작가로서 인도네시앙의 동부 지역을 두루 여행했다. 수하르토가 <새질서> 정부를 출범시키자, 시토르는 체포되어 1975년까지 감옥에 있었다.


무함마드 야민(Minangkabau Muhammad Yamin: 1903-1962 )

인도네시아의 시인이자 극작가, 정치가, 역사학자
좌익 무르바당 당원
인도네시아 현대시의 개척자 중 한 사람
서부 수마트라 사와흐 룬토 출생
+ 소개(영어)

1920년에 화란어 잡지 <젊은 수마트라>에 말라야어로 글을 발표했고, 1922년에 <조국>지에 시인으로 데뷔. 이때 '조국'은 인도네시아가 아니라 수마트라를 뜻했다. 1928년에 두번째 시집 Tumpah Darahku 발간. 자카르타에서 법률 공부. 1932년 졸업후 국제법 전문가로서 1942년까지 일했다. 일찍이 민족주의 운동에 가담한 그는 민족어 바하사 인도네시아어가 국어로 정착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일제의 점령기간(1942-1945)에는 일본이 후원하는 민족주의자 조직 푸테라에서 일했다. 1945년 그는 새 조국이 화란령 인도네시아분만 아니라 사라와크, 자바, 말라야, 포루투갈령 티모르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초대 대통령이 된 수카르노가 이 주장을 지지했다. 독립을 투쟁 과정에서 야민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