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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IRAN)

 

 

▒ 이란 문학 홈페이지

▒ 파터네 허즈 세이드 자버디 장편소설, [눈뜸], 오늘, 1999

▒ 영어판 이란 문학서적들

▒ 이란 작가 소개 사이트

▒ 신양섭 : 페르시아 문학의 수사법 연구(외국문학연구 제9호)

▒ 이란 시인 소개 사이트

▒ 중앙아시아와 이란 문인 작가 전기 포털 사이트

▒ 이란 시인, 작가 소개 사이트: 체계적(강추!)


서데그 헤더야트(Sadeq Hedayat 1903-1951)

이란의 소설가, 희곡작가
+ 소개(영어)
+ 소개(영어)

20세기 페르시아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의 단편소설들은 매우 비극적인 세계관과 조국의 유산에 대한 애정을 반영한다. 가장 유명한 저작은 [눈먼 올빼미](1937). 1951년 프랑스 파리에서 비운의 죽음을 맞이했다.

소설집: 사면(김영연 옮김, 외대출판부) 소개

이란의 소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서데그 헤더야트의 문제작인 이 작품은 단편 모음집으로 그의 운명론적인 사고와 심성을 특유한 감각의 언어로 묘사한 심리 소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을 주인공으로 그들만의 고독과 외로움은 현실을 도피하므로 위로 받을 수 있다고 인식한 작가는 자살을 또 다른 삶의 의미로 정의하고 있다. 사면', '언니', '남편을 잃은 여인', '살아 있는 사자'는 여성들이 겪는 사회의 모순과 부조화를 이슬람적인 배경으로 희화시켜 울 수 조차 없는 처절함과 애틋함으로 표출하고 있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더쉬 어콜'은 주인공인 그가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슬픔 때문에 생의 의욕을 잃고 고뇌하며 토로한 고백을 키우던 앵무새가 의미없이 따라하는 지저귐과 주인공의 죽음으로 조화시켜 삶의 아이러니를 암시하고 있다. 그의 소설들은 죽음과 삶으로 구성된 대칭 구조로, 인생이란 운명대로 이어가는 여정으로 상징하고 있다.


자말자데(Mohammad Ali Jamalzadeh1895-1997)

이란의 소설가
이스파한 출생
페르시아 근대 산문문학의창시자로 추앙받고 있음
+ 소개1(영어)
+ 소개2(영어)

그의 아버지는 전제정치에 대항하여 싸우다가 투옥되어 살해당했다. 13세때 레바논을 거쳐 유럽으로 건너간 그는 베를린에서 민족주의자 단체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프랑스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1917년 스톡홀름에서 열린 샇히주의자대회에 이란국민회의 대표 자격으로 참석했다. 그후 1930년까지 베를린 주재 이란대사관에서 통역자로 일하는 한편, 제네바에 있는 국제노동기구에서도 일했다.

주요 작품으로 [거기 있고, 거기 없다], [페르시아는 달콤하다], Sahraye Mahshar (1947), Talkho Shirin (1955), Kuhna va Now (1959), Ghair az Khudo Hichkas Nabud (1961), Asmano Risman (1965), Qissahai Kutah Baraye Bachchehaye Rishdar (1974), and Qissai Ma ba Akhar Rasid (1979) 등이 있다. 어린이들을 각별히 사랑했다. 생애의 대부분을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보냈으나,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귀국했다. 제네바에서 사망했다.


포룩 파록저드(Forugh Farrokhzad: 1935-1967 )

이란의 시인
테헤란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생
+ 소개(영어)
+ 추모 홈페이지(영어) : 영어번역시 포함
+ 파록저드 육성 시(Tavalodi Digar) 낭송(리얼오디오 파일, 다운로드 후 감상)

중학교까지 마친 후 재봉과 그림을 배웠다. 17세에 결혼했지만 아이를 하나 낳은 뒤 이혼. 그후 아이를 전남편에게 맡긴 뒤, 독립적인 생활을 하면서 시에 전념. 1950년대 이란의 여성에 대한 의무와 관습적인 결혼제도에 대한 감정을 토로하는 시를 썼다. 당시 이란에서는 이혼한다는 것 자체가 충격적인 일로서, 파록저드는 세인의 이목을 끌었다. 당연히 비판적인 시선이 대부분이었다. 1958년 유럽 여행중 영화제작자 겸 작가인 고울스탄을 만나 32세의 나이에 자동차 사고로 비운의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교제했다. 1955년 첫시집 발간 이후 총 다섯 권의 시선집을 펴냈다. 1962년에는 다큐멘타리 필름을 찍어 여러 개의 상을 받았고, 이듬해 유네스코에서 그녀에 관한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니머 유시즈(Nima Yoshig:1895-1960)

이란 현대시의 개척자
카스피해 연안 마잔다란의 유시 태생
본명: 알리 에스판디어리(Ali Esfandiary)
+ 니머 유시즈 소개 홈페이지(영어): 시낭송 오디오 포함

아버지는 농부였다. 따라서 그는 양떼를 따라 이곳저것을 돌아다니는 전형적인 목동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런 유목적 생활 경험이 훗날 그의 시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생 루이 학교에서 불어를 공부했다. 고등학교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시인이던 네잠 바파 선생으로부터 고무를 받았다. 그후 고전시의 격식을 거부하고 프랑스 상징시의 영향을 받은 실험적인 자유시운동을 벌였다. 대표작으로 [환타지] [불사조] [감옥] 등이 있다.


너더레 너데르푸르(Nader Naderpur: 1928-2000 )

테헤란의 상류층 출생
+ 너더레 너데르푸르 소개 홈페이지(영어): 전기와 시 소개


부모는 둘다 예술가였다.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그는 자신의 민족주의적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하피즈와 같은 고전 시인들보다는 유시즈와 같은 당대의 선배 작가들을 모방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졸업후 프랑스에 가서 소르본느에서 5년간 불문학을 공부했다. 이 경험은 훗날 많은 프랑스어 시를 이란어로 번역하게 했지만, 중요한 것은 페르시아시에 새로운 전망을 주게 된 것이다. 1940년대 이란의 격변기에 그는 여러 공산당 신문에 시를 발표한다. 첫번째 시집 [눈과 손](1953)은 프랑스학파의 영향을 짙게 반영했다. 1960년 중반 이탈리아를 여행하기 전까지 세 권의 시집을 더 펴냈다. 1950년대 중반에는 여성 시인 프록저드와 교제를 하기도 했다. 1979년 이란혁명 이후, 한동안 시작을 중단했다. 그는 미국과 유럽에서 말년을 보냈는데, 2000년 2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사망했다.


파리둔 마쉬리(Fereydoon Moshiri:1926 - 2000)

이란의 대표적인 시인
+ 홈페이지(영어)


어린 시절부터 시에 흥미를 지녔으며, 대학 시절 시집을 펴냈다. 후에 현대시를 접하면서 낡은 전통의 시를 거부했다. 자유시의 창시자 역할을 하는 것이 목표였다. 대학 졸업후, 우편전신전화부에서 일했고, 말년에 이란 정보통신회사에서 은퇴했다. 1955년 테헤란에서 첫시집을 펴냈고, 2년 후에는 몇 편의 시를 첨가하여 이 시집을 새로 엮어냈다. 두번째 시집은 1956년에 발간되었는데, 청년시절의 절망과 어둠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있다. 그후에도 여러 권의 시집을 펴내는 바, 그의 시적 주제는 평화와 사랑, 우정 등으로 바뀌어갔다. 그는 시를 통해 이란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오마르 카얌(Omar Khayyam: 1048-1131)

이슬람 수학자·천문학자·시인
이란 북동부 네이샤부르 출생
+ 소개(영어)
+ 루바이야트(김병옥 역)- 정음사, 1973: 루바이야트는 <사행시>를 뜻하는 <루바아이>의 복수형으로 책 전체가 이런 사행시들로 이루어져 있다. 19세기 영국 시인 피츠제랄드가 번역하여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바 있다.

사랑과 자유를 찬양한 4행시 《루바이야트》의 작자로도 유명하지만, 수학자·천문학자로서의 업적이 크다. 《대수학(代數學)》에는 2차방정식의 기하학적·대수학적 해법이 있을 뿐만 아니라 13종의 3차방정식을 인정하고, 그것들 모두를 풀려고 시도하여 그 대부분에서 부분적인 기하학해법을 밝혀냈다. 다만 그때 음(陰)의 근(根)은 고려하지 않았다. 또한 3차방정식의 근을 원뿔곡선을 이용하여 구했다. 그는 유클리드의 《기하학원본(Stoikheia)》의 공준(公準)과 정의를 연구하였다. 천문학에서는 셀주크왕(王) 잘라르 웃딘 말리크샤의 요구로 1074년경 이스파한의 새로운 천문대에서 1년이 365일인 페르시아력(曆)을 개량하는 일을 하였다. 그가 개량한 <잘라르력>은 약 5000년에 하루의 오차밖에 생기지 않기 때문에 3330년에 하루의 오차가 생기는 오늘날의 그레고리오력보다 정확하다.(심마니 백과사전)


하피즈(Hafiz:Khajeh Shamseddin Mohammed Hafiz Shirazi)

14세기 페르시아 시인
이란 시라즈 출생
하피즈는 <코란 암기자>를 의미
+ 홈페이지(영어)

그는 고전적인 종교교육을 받고 코란과 다른 신학적인 주제에 관해 강의하였으며 고전 종교작품들에 대한 주해서를 썼다. 난세(亂世)에 살면서도 마음의 평정과 시적 상상력을 키웠으며 청년시절에 목격한 권력투쟁의 유혈참사에 큰 영향을 받았고, 현세에 대한 불신과 운명론은 작품 기조(基調)의 하나가 되었다. 페르시아 문학사상 서정시의 최고시인으로 평가되었고, <신비의 번역자> <불가사의한 혀>라는 별명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자유분방하고, 종교의 외면적 속박을 무시하였으며 신비주의 시인으로서 속세를 초월하여 위선적 태도를 격렬히 비난하고 현세에서 일어나는 사건 전체를 상징적으로 보고 시를 짓는 데 노력하였다. 현존하는 가장 권위 있는 《하피즈시집》은 495편의 서정시와 약간의 서사시를 수록하였다. 작품의 가장 큰 특색은 상징적 시 작법으로, 시의 진의를 둘러싸고 동·서 학자간의 해석이 다르다. 동양의 학자는 신비주의적 입장에서 해석하는 데 비하여 서양의 학자는 현실적 견지에서 보고 있다. 그의 시집은 중세 이래 <하피즈 점(占)>으로도 사용되며, 오늘날까지 페르시아어 문화권에서 가장 많이 애송되고 있다. 인도·터키 등의 시인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J.W. 괴테의 《서동시집(西東詩集)》은 《하피즈시집》의 강렬한 감명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유명하다(심마니 백과사전)


자럴 얼레 아흐마드(Jalal Al Ahmad: 1923- 1969)

이란의 대표적인 소설가
테헤란 출생
+ 소개(영어)

팔레비정권에 의해 핍박을 받기 전인 1944-48년 사이에 투데당에 가입해 활동했다. 1951-53년 사이에는 모하메드 모사데크의 민족주의 정권을 지지했는데, 정권의 붕괴 이후에도 비공식적인 대변인을 맡아 지식인들의 저항의 목소리를 전했다. 다섯 권의 단편선, 세 권의 장편을 남겼다. 그중 이란 현대 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 [땅의 저주]가 가장 유명하다. 이 작품은 시골에 부임한 젊은 교사가 체험하는 사건을 위주로 하여 이란의 농촌 문제를 사회화한 것이다. 근대화의 물결에 파괴되는 이란의 농촌 실상을 깊이 있게 파헤치고 있다. 관리인과 반목하는 교장, 농작물을 이용하여 치부하는 동생, 토착민으로 인습만을 고집하다 죽어가는 노인들, 시골 여인상을 대변하는 일시처, 농민들의 정신적 지주이지만 기만에 가득찬 성직자, 전통적인 사고와 지주들의 통치로 집시가 되어 버린 유목민 화가 등, 각기 개성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여 근대화의 물결로 불균형을 이룬 마을의 공동체를 파괴한다. 부인에 따르면, 아흐마드는 정권의 사주를 받은 이들에게 독살되었다고 한다.


파르누쉬 모쉬리(Farnoosh Moshiri)

이란의 여성작가
테헤란의 문학적 가문에서 출생


1979년 미국 아이오와 대학에서 드라마 전공. 이란에서 극작가와 소설작가로 활약하다, 1983년 지식인과 예술가들에 대한 대량 체포령이 발동하자 갓난아이와 함께 아프가니스탄으로 탈출. 거기서 다시 인도로 도망가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다락방에서 글을 썼다. 1987년부터 미국 휴스턴에서 살고 있다. 휴스턴 대학 창작과정 졸업. 현재 휴스턴의 몽고메리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주요작품으로 [신의 벽 앞에서](2000)과 인도에서 숨어지낼 때의 경험을 그린 [목욕탕집] 등이 있다.


시린 에바디(Shirin Ebadi: 1947- )

이란의 작가
변호사
인권운동가
2003년 노벨평화상 수상

이하 기사: 이란의 여성 인권변호사 시린 에바디(56)가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뽑혔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10일 에바디가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공헌한 공로를 인정해 평화상 받을 이로 뽑혔다고 발표했다. 위원회는 “에바디가 특히 여성과 어린이 권리를 위해 싸웠고, 변호사와 판사, 교수, 작가, 운동가로서 조국 이란과 다른 나라에서 분명하고 당당하게 소신을 밝혀왔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에바디는 “이 상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이란에서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 일한 모든 사람들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수상으로 에바디는 102년 노벨 평화상 역사에서 여성으로서는 11번째, 이슬람 여성으로는 첫 수상자가 됐다. 에바디는 1974년 이란의 첫 여성판사로 임용됐으나 79년 ‘호메이니 혁명’ 이후 사직한 뒤 여성과 어린이 인권, 민주주의를 위해 활동해 왔다.


모하메드 알리(Mohammad Mohammad Ali: 1948-)





그의 아버지는 사업가였으며, 어머니는 주부였다. 그의 어머니는 고대 페르시아의 신화들을 좋아했고 자녀들에게 그것들을 자주 들려주었다. 시를 쓰던 한 선생님이 Ali의 문학에 대한 관심을 눈 뜨게 했고 그는 학생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가 살던 지방에서 열린 문학제에 단편으로 참가하여 수상한 것이 그의 첫 번째 상이었다. 문법학교에서 그는 당대의 이란 작가들에 초점을 맞췄지만 잭런던이나 어니스트헤밍웨이의 작품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Ali는 희곡 대본을 쓰고 그가 직접 연기를 하기도 하였다. 그는 교지에 기고한 공로로 특별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의 첫 번째 이야기집인 는 1974년에 출판되었고 4년 후 두 번째 이야기집인 가 출판되었다. 정치학과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그는 공무원으로 근무하기도 하였다. 1977년에 그는 이란작가협회에 가입하였다. 같은 해에 그는 유명한 Teheran Goethe Institute Lectures에 참여했으며 60여명의 탄압을 받은 작가들이 Schanh의 독재와 검열에 대한 반발적인 작품을 쓰던 시기이기도 하다. 1980년 그는 그가 구소련으로의 여행담을 싣기도 했던 문학지 의 편집장이 되었다. 1987년에는 그의 세 번째 단편 와 에세이집 가 출판되었다. 1991년에는 소설 과 이야기집

Mohammad Ali는 이란정부의 검열에 반기를 든 134명의 작가 중 한사람이다. 그것은 국제적 이슈가 되었으며 금지된 작가협회 활동의 새로운 국면을 예고했다. 협회는 재구성 단계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이것은 이란의 비밀조직이 2명의 멤버를 살해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하지만 아르메니아에서 열리는 작가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버스로 이동하던 21명의 작가들에 대한 암살시도는 실패했다. 암살대상 중 하나였던 Mohammad Ali는 일간지 에 이 위험한 여정에 대해 기고를 했다. 1997년 그는 소설 을 내었고 1998년에는 단편집 을, 그리고 1년 후에는 구소련의 여행기 를 개정 출판하였다. 그의 최근작 는 작년에 출간되었으며 그는 현재 테헤란에서 그의 부인과 두 자녀와 함께 살고 있다.


나비드 케르마니(Navid Kermani: 1967- )





쾰른과 카이로와 본(Bonn)에서 희곡과 철학, 이슬람학을 공부한 후에 그는 본(Bonn)대학에서 교편을 잡았고 Frankfurt의 Schauspielhaus와 Mulheim의 Theater an der Ruhr에서 예술 감독직을 맡았다. 코란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을 한 그의 논문은 1997년에 출판되었는데, 여러 번의 재출판을 하고 2000년에는 Ernst-Bloch-Forderpreis를 수상하였다. 은 1995년부터 계속 에 게재한 보고서들과 에세이들의 산물이다. 그는 2001년 을 출판하였는데 그것은 미묘한 주제에 대한 섬세한 표현으로 갈채를 받았다. 그것은 이집트 학자인 Nasr Hamid Abu Zaid의 삶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의 코란에 대한 현대적 번역은 사람들이 그를 이교도라고 부르게 했을 뿐 아니라 그의 부인으로부터 이혼을 당하게 하였다. 은 자살폭탄테러범들이 생기는 현상을 주제로 하고 있고 은 그 극단성과 폭력적인 투쟁으로 국제적 논쟁이 되고 있는 무슬림지역에 대한 6개의 보고서의 모음집이다. 이스라엘의 사회학자 Natan Sznaider는 Navid Kermani의 저서들에 대해 <세계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책 중의 하나>라며 완전히 긍정적인 평론을 했다. 그는 경험에 대한 참고와 증언들을 통해 그의 보고서에 확실성을 둠으로써 그의 심도 있는 대가적 집필방식과 함께 보도문학과 역사기술의 방법의 표준을 만들어내었다. 이란인이자 독일 시민권자인 그는 독일의 선구적인 이란학 학자이다. 그는 현재 이슬람세계의 전문가이자 비평가이며 가장 중요한 중재인이다. 그는 작가이자 평론가로서 그리고 비평가로서 유명하다. 그의 저서 는 캐나다 음악가에 대한 예찬이자 삶과 죽음에 대한 서술이며 닐영(Neal Young)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을 위한 책이다. 는 다음과 같은 모티브를 연상케 한다. “이 아름다움이 끝날 때 쯤, 작은 지식의 책은 삶이란 무대에서의 연주가 될 것이다.” 3년 동안 그는 Berlin Wissenschaftskolleg(Institute for Advanced Study)에서 교수로 있었다. 작년에 그는 Cologne으로 돌아와서 그의 아내와 딸과 함께 자유기고가로 살고 있다. 그의 최근작인 <40 Leben(40 Lives)>는 올해에 출간되었으며 40개의 화법으로 신비주의적 신앙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스린 시에게(Nasrin Siege:1950- )





이란에서 태어나 그녀가 9살일 때 독일로 왔다. 그녀는 Hamburg와 Flensburg에서 자랐다. Kiel에서 심리학과 교육학을 공부한 후 그녀는 Taunus의 Friedrichdorf에 있는 알코올중독자들을 위한 병원에서 근무하였다. 1983년부터 그녀는 그녀의 독일인 남편과 함께 아프리카에 살았다. 그녀는 자유기고가로 활동하면서 민간요법과 아프리카의 예술에 관심을 가졌고 설화 등을 수집하였다. 그녀는 탄자니아의 고아들과 함께하는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Dar-Es-Salaam 송환아동보호소의 카운슬러이기도 하다.

Nasrin Siege의 글은 다른 문화에 대한 선입관을 다룬다. 그것들은 진부함 없이 지구 반대편의 아이들이 처한 상황을 꿰뚫어본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저는 다른 젊은 작가들의 책들이 ‘이국적’ 이고 백인 우월주위를 가지며 또는 조롱을 하는 것에 대해 자주 화가 납니다. 저는 저와 비슷한 문제를 가진 여자들이 등장하는 어린이 책이 없는 게 아쉽습니다. 그녀의 첫 번째 어린이 책인 는 1990년에 출판되었다. 이 책은 잠비아에서 살고 있는 소녀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가는 융화 적이고 다채로운 삶을 살아가는 Luvale 사람들의 농사, 낚시, 사냥 등을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Sombo는 여학교인 Munkanda 입학하는데 그곳에서 Sombo는 여성으로서의 삶 뿐 아니라 단순한 시골처녀를 넘어선 꿈을 이루어내기 위한 준비를 하게 된다. Sombo의 이야기는 수업시간에 자주 이용되고 소설 과 나란히 Children’s Literature Award of the Berlin Senate’s Commissioner for Foreigners 상을 수상하였다.

그녀의 책들은 1996년 그녀의 소설 처럼 그녀의 삶을 많이 반영한다. 에서는 열한 살 난 소녀 Shirin이 그녀의 부모를 따라 독일로 가게 된다. 그녀는 친구사귀기를 어려웠고 점점 더 엉뚱해져간다. 동시에 그녀는 부모로부터도 멀어져간다.

Nastin Siege의 명상가로서의 역할은 그녀의 이야기에서 잘 드러난다. 에서 그녀는 토끼인 Kalulu의 흔적을 쫒아간다. 그리고 싸움과 항복, 사랑과 증오, 아프리카의 지혜, 유럽인들의 영향에 대해 이야기 한다. 청소년들을 위한 그녀의 최근작은 으로 올 8월에 출판되었다. 현재 그녀는 다시 독일에서 거주중이다.


레자 유세피(Mohammas Reza Yousefi: 1953- )

이란의 Hamadan 태생



150개가 넘는 수상경력으로 그는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책들을 다작하는 이란작가 중 한 사람이다. Zagro산의 외관에서 소를 키우며 사는 그의 대가족과 보낸 유년시절은 부족 공동체인 유목민족의 자연과 그 위험성 그리고 신화에 대한 깊은 지혜로 그를 이끌었다. 테헤란에서 역사와 문학을 공부한 그는 선생님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전국 방방곡곡의 거리극장에서 배우와 감독의 역할도 하였다. 이러한 떠돌이 인생을 통해 그는 이란사회의 다양성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저는 이란의 모든 아이들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사막과 숲과 산에 사는 아이들, 밤에 페르시아 만의 급류 속으로 낚시를 하는 아이들, 길들여지지 않은 말을 타는 투르크족의 아이, 할아버지의 악기를 신성한 유물처럼 소중히 하는 터키 아이, 말을 사랑하고 레슬링을 좋아하는 투르크족 아이 등이 있었죠.” Yousefi는 1978년부터 자유기고가로 활동하며 Farsi에서 글을 쓴다.

20년이 넘도록 그는 수많은 작품을 내었다. 그 중에는 민담을 각색한 것, 전설을 번역한 것, 현대 동화, 현재 이란의 일상이야기 등 여러 작품이 있는데 그는 판타지와 어린이와 청소년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는 아득히 먼 시간들과 문화들이 독자들을 위한 새로운 시간적 의미를 얻게 된다. 그는 솜씨 좋게 인간의 다양함을 묘사하고, 사실상 강한 작품의 주인공의 뚜렷한 단점과 인간의 위대함을 밝히고 있다. 그의 상징적인 중편소설 에서는 Meybod의 도자기 마을에 가뭄이 찾아들고 주민들은 “sunlike girl"을 찾게 된다. 그들의 지도자는 오랜 전설에 따라 그녀를 재물로 바치면 그토록 기다리는 비가 올 것이라고 알려준다. 하지만 마을의 소녀들은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그의 제자인 Merhad의 꿈에 갈망하던 소녀가 나타난다. 그가 각각의 소녀들이 신성한 가치를 물려받았다고 깨달은 순간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Merhad는 새로운 지도자가 된다.

Mohammas Reza Yousefi는 많은 상을 받았고 그의 많은 작품들은 아동들을 위한 연극으로 만들어져 연출 되었다. 그의 연극 “Khaleh tanha, Khaleh ba ma"는 1998년에 Hamadan Theatre Festival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는 두 번이나 IBBY Diploma를 받았으며, 2000년에는 Hans Christian Andersen Award에 후보로 지명되었다. 그는 현재 테헤란에서 그의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