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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IRAQ)

  

 

압둘 와합 알 바야티

 

압둘 와합 알 바야티[Bayati, Abdul Wahab al, 1926 ~ 1999.8.3]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의 실천적 문학운동을 펼쳐 참여문학의 모범을 보인 시인이다. 1926년 바그다드에서 태어났다. 1950년 바그다드대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 공립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한편, 《Al-Thaqafa Al-Jadida》라는 문화잡지를 편집하였다.초기에 공산주의 정치에 관여하다가 반정부 활동을 벌여 국외로 추방당하였다.

 

1954년 이라크를 떠나 레바논·시리아·이집트 등지에서 살다가 1958년 왕권이 전복된 뒤 이라크로 돌아와 교육부장관을 역임하였다. 1959년 이라크대사관의 문화공보관으로 모스크바에 갔다가 1961년 사임하고, 구소련과학아카데미 〈Asian and African Peoples' Institute〉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동유럽 지역을 여행하며 그곳에 머물렀다.
 1968년 범아랍 사회주의당인 바트당이 정권을 잡은 후 이라크로 돌아왔다가, 몇 년 뒤 좌파를 탄압하는 정치운동을 피하여 다시 도피하였다. 1972년 바그다드로 다시 돌아왔다.
 1980∼1990년 이라크 문화공보관으로 스페인에 머물던 그는 1990년 쿠웨이트가 이라크를 침공한 뒤 스페인을 떠나 요르단의 피난소로 갔다가 1996년 시리아로 옮겨갔다. 1995년 문화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하고 난 뒤 사담 후세인 정권이 그의 이라크 시민권을 박탈하자, 남은 여생을 동료 이라크 망명자들과 함께 다마스쿠스에서 보내다가 1999년 8월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경향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으나, 곧 신화에 바탕을 둔 풍부한 문화적 유산을 반영한 역사적인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1950년 첫번째 시집을 출판하였고, 1954년 대표작인 《Abariq muhashshama》을 펴냈다. 대부분 자유시로 이루어진 이 시집은 곧 아랍권 전체로 널리 알려졌다. 이후 1998년까지 35권이 넘는 시집을 펴냈다.
 고전적인 아랍시 형식을 타파하고 자유시를 개척하였으며, 일상어에 가까운 단순한 언어를 구사하였고, 전통시로부터 풍부한 문학적 인유를 사용하였다. 후기 시들은 대부분 수피즘(Sufism)의 영향을 받았다. 현대 아랍시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엠파스 백과사전)

  

  

 

바드르 샤키르 알 사이얍 

 

바드르 샤키르 알 사이얍(Badr Shakir al-Sayyab 혹은 al-Sayab) - 1926년 바스라에서 출생하여 1964년에 타계했다. 1940~1950년대에 자유시 운동을 시작한 현대 아랍시의 선구자이며, 20세기 가장 유명한 아랍 시인 중의 한 명이다. 40년대 말 나지크 알 말라이카와 더불어 자유시 운동을 전개했고, 50년대에는 많은 시를 쏟아냈다. 시에서 신화의 채용에 주의를 기울여 만든 시 [비의 송가]는 아주 유명하다. 그는 시의 요소들을 혁명적으로 바꾸었고, 사적인 심정을 다룬 시들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적 참여시도 많이 썼다. 1960년에 나온 시집 [비의 송가]는 현대 아랍시단에서 가장 의미있는 시집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는 맑시스트로서 사상적 편력을 출발했으나, 후에는 민족주의 주류에 가담했다. 아직 30대이던 무렵, 퇴행성 신경장애를 앓았는데, 결국 궁핍 속에서 사망했다. 일곱 권의 시집과 루이 아라공, 나짐 히크메트, 엘리어트 등의 번역시집을 펴냈다. 팔레스타인의 여가수 Tania Tamari Nasser가 그의 시 "The River of Death"를 노래로 부르기도 했다.

 

 

 

파딜 알 앗자위

 

 

파딜 알 앗자위(Fadhil al-Azzawi) - 1940년 이라크 북부 키르쿠크 출생. 바그다드대학교에서 영문학을, 독일 라이프찌히대학에서 저너리즘을 전공했다. 사상범으로 체포돼 3년간 옥고를 치른 후 1977년 당시 동독에 망명했다. 1983년에 동베를린으로 이주하여 자유기고가로 일했다. 시 이외에도 평론과 소설을 썼고, 번역 작업도 병행했다. 그의 작품 중 일부가 독일어, 영어 등 몇 개 국어로 번역된 바 있다.

 

 ▒ 자세한 소개와 시(영어)

 

 ▒ 시(영어)

 

 

블랑 알 하이다리

 

블랑 알 하이다리(Buland al-Haidari 또는 Bouland Al-Haidari) - 1926년 이라크 북부에서 출생하여 1996년에 타계했다. 현대 아랍 자유시의 선구자였다. 첫시집 『진흙 때리기』는 고전 아랍시의 형식과 내용을 크게 혁신한 문제작으로 평가된다. 시집 [지친 보초병의 노래]와 [삼 차원의 대화] 등이 있다. 그의 이름을 딴 문학상이 젊은 시인들에게 주어지고 있다. 열살때 쿠르드 출신인 가족과 함께 바그다드로 이주했다. 젊은 시절, 대학에 나가는 대신 바그다의 까페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전위예술과 좌파 정치에 대해 토론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는 처음에 쿠르드어로 시를 썼으나, 후에 아랍어로 바뀌었다. 1953년에 결혼. 1963년에 정치적 반대자의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시인으로서의 명성 때문에 사면을 받았다. 석방 이후, 그는 레바논으로 가서 14년을 보냈다. 1976년에 다시 바그다드로 돌아왔다. 1976년부터는 사담 후세인이 권력을 잡는 1979년까지 예술잡지의 편집자를 지냈다. 1980년에는 다른 많은 이라크인들처럼 런던으로 망명했다. 거기서 그는 아랍어 예술잡지를 펴내기 시작했으며, 이라크의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아랍 민주연맹을 조직하기도 했다. 69세의 나이로 런던에서 사망.

 

 

둔야 미카일

 

둔야 미카일(Dunya Mikhail): 1965년 바그다드 출생. 바드다드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미국 디트로이트 웨인주립대학에서 아랍어를 가르치고 있다. 대표적인 반전시인 중의 한 명이다.

 

사아디 유스프

사아디 유스프(SAADI YOUSSEF: 1934-  ) 시인 Saadi Youssef는 1934년 이라크의 Basra 근교에서 태어났다. 이스라엘이 독립선언을 하던 해인 1948년에 젊은 지식인들은 아랍 고전문학을 버리고 자유시를 아랍 시문학에 접목시켰다. 이러한 새로운 경향은 사막의 폭풍과 같이 걷잡을 수 없었고, Yousseff를 포함한 차세대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게 되었다. 그는 바그다드에서 아랍문학을 공부했다. 나중에 그는 여러 번 떠나야만 했는데 그것은 이라크의 주요 지식인들과 뜻을 같이하는 그의 신념 같은 정치적 활동 때문이었다. 70년대 후반 사담후세인이 정권을 잡자 그는 바그다드를 떠나서 다년간 여러 곳에서의 망명생활 끝에 현재는 영국에 살고 있다. Youssef는 Iraqis Badr Shakir as-Sayyab와 Abdalwahab al-Bayati같이 시문학을 급진적이고 힘이 있는 집단에서 영향력 있게 하려고 노력한 “Free Verse”운동의 시들의 영향을 받았다. 50년대와 60년대에는 Youssef는 정치적인 시를 썼고, MAhmud Darwish와 Amal Dunqul같이 서민들의 시인이 되기를 주장했다. 그는 반제국주의 운동을 지지했고 같은 시기에 사회공산당이 창당되기도 했다. 70년대 중반부터 그는 정치적 시를 쓰는 것을 중단했다. 그의 시들은 점점 더 많은 은유가 있지만 매우 간결한 Zen-Koan같이 되어갔다. <I spy with my little eye>같은 놀이와 같이 분명히 매일 매일의 자연적인 것들을 이야기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사물 뒤의 사물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서정적 실제주의의 특성을 지닌 그의 언어는 정말 참되고 직설적이다. Oktay Rifat와 Melih Cevdet Anday와, Garcia Lorca와 Jannis Ritsos 그리고 Walt Whitman 의 작품을 번역하는 번역가로서 그는 세계문학과의 아주 가까운 연결고리를 느낀다. Saadi Youssef는 기회가 없기도 하였지만 그의 모국에 한 번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였다. 끊임없는 갈망이 그의 여정에 함께하고 망명과 이민이라는 주제가 편재한다. “길잡이별을 잃기는 했지만, 먼 내 고향은 아직도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는 “제가 보기에 우리는 이라크 전쟁이 끝난 후의 밀려들 수 있는 일련의 큰 변동 및 여파에 대해 여전히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라고 이라크전이 끝난 후의 정치적 미래에 대해 직설적으로 말한다. 정치적 억압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들은 놀라울 정도로 경쾌하다는 것이 그의 시문학의 매력이다.


 

 ▒ 시 America, America 외(영어)

 

 ▒ Shatt Al-Arab 외(영어)

 

 

말라이카

 

 

나자크 알 말라이카(Nazik al-Mala'ika:1922-1992) 이라크의 시인이며 비평가. 아랍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여성 시인 중 한 명. 바그다드 사범대학 아랍어과 졸업. 졸업후 1년간 미국 프린스턴대학에서 수학. 1954년-55년 위스콘신대학 수학. 1958년 바그다드 사범대학 학장. 주요 시집 [삶의 비극] [밤의 연인] [인간을 위한 노래], [기도와 혁명을 위하여], [바다가 색깔을 변화시킨다] 등. 가장 유명한 시로 [콜레라]가 있다.

 

 ▒ 약력 보기

 

 ▒ 시 작품들

 

 ▒ 시 I am(영어)

 

 ▒ 해설: 전경완, [아랍 이슬람문학의 이해]9부산외대출판부) 209-213쪽

 

 

앗 타카를리

 

푸아드 앗 타카를리(Fuad al-Takarli: 1927 -  ) 이라크의 소설가. 바그다드에서 태어나 1949년 바그다드대학 법학과를 졸업했다. 법무부와 바그다드 법원 들에서 일했다. 1964-66년가지 파리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1983년에 판사직을 사임하고 집필에만 전념. 1950년대에 집필 활동을 시작, 1960년대에 첫 단편집을 펴냈다. 여러 가지 형태의 정치적 억압을 모더니스트의 자유스러운 서술 형식을 통해 드러내 보인다. 특히 성의 문제를 사회 저변에 대한 탐구와 병행함으로써, 좀더 복합적이고 신중한 문제로 부각시켰다. 대표작 [머나먼 메아리](1980)는 압둘 카림 까심 독재 말기의 바그다드 중산층 대가족을 그린 소설이다. 1990년 이래 튀니지에서 살고 있다. 2000년에 아랍소설을 대상으로 수여하는 오와시스상을 수상했다.

 

 ▒ 소설 [돌아가는 먼 길] 서평(영어)

 

 ▒ 해설: 문애희, 현대아랍문학강의, 열린책들, 239-242쪽

 

 

부타이나 알 나시리


부타이나 알 나시리(Buthaina Al Nasiri: 1947 - ) 이라크의 여성 소설가. 바그다드대학 예술학부 졸업. 1979년 이래로 카이로에서 유엔의 지원하에 이라크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내는 출판사를 운영하며 살고 있다. 아랍어로 쓴 다섯 권의 작품집을 펴냈다. 대표작 [마지막 밤]. 이라크에서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에 대한 깊은 애정을 반영하는 작품들을 썼다. 그녀는 다른 여성작가들과는 달리 여성의 지위 문제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있으며, 인간의 보편적인 삶과 죽음의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몇몇 작품들은 양성 간에 존재하는 다양한 관계를 그려내고 있다. 그녀의 작품들은 여러 유럽어로 번역되었다.

 

 

알리아 맘도흐

 

알리아 맘도흐(Alia Mamdouh: 1944 - ) 이라크의 작가. 아버지는 이라크인, 어머니는 시리아인. 1971년 이라크의 마스탄사리야대학에서 심리학 학위 취득. 첫번째 단편집 [조롱의 개시]를 1973년 베이루트에서 펴냈다. 그밖의 주요 작품으로 [B부인을 위한  구석자리](1978), 장편소설 [라일라와 늑대](1981), [하바트 알 나프탈린], [열정](1995) 등. 그녀의 작품은 영어, 불어, 이탈리아어, 화란어 등으로 번역, 소개되었다. 1970년부터 1982년까지 잡지 편집자. 현재는 파리에 살고 있다.

 

 ▒ 대담(영어)

 

자바르 야신 훗신

 

자바르 야신 훗신(Jabbar Yassin Hussin)은 이라크의 바그다드에서 1954년 태어났다. 근는 세속적이고 정치적으로는 좌익인 환경에서 성장했다. 1968년 Ba'ath당이 정권을 잡은 후(당시 국방부 장관은 사담 후세인이었다.) 14세에 그는 공산당에 입당했다. 그는 학생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바그다드의 젊은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한 것을 비롯한 여러 정치적 활동으로 여러 번 체포되고 고문을 당하였다. 그는 1973년 공산당이 Ba'ath당으로 넘어갈 때 탈당했다. 그 이후로 그는 후세인 정부의 지속적인 감시를 받아야만 했다. 그는 바그다드 대학의 학생이었고 저널리스트로 잠시 활동을 하기도 했지만 공부와 일을 모두 그만두어야 했다. 대신에 그는 아이들을 위한 단편이나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1976년 그는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프랑스로 망명해야만 했다. 망명생활을 하면서 그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담 후세인에게 비판적인 입지를 가지고 있는 잡지인 <Aswat(The Voice)>를 창간했다. 그는 단편뿐 아니라 여러 신문잡지에 기고도 하였다. 그의 글에서는 잊을 수 없는 망명생활의 경험과 고향 및 자아상실에 대한 것들이 우선적으로 주제가 되었다. “저는 제 뒤에 남긴 것들을 기억하기 위해 글을 씁니다.” 그는 아랍어로 글을 썼고 망명생활 당시의 프랑스어의 영향으로 그의 글은 의식적이고 감상적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의 경험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접근을 이용한 <Adieu, l'enfant, 1996>을 비롯하여 90년대 초반부터 프랑스에서 인쇄되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 <Le lecteur de Bagdad. Contes et nouvelles, 2000>과 <Histoires de jour, contes de nuit, 2003>은 그의 고향에서의 삶을 연상시킨다. 같은 해에 출판된 <Paroles d’argiles Un Irakien en exile>은 실제 아랍 신문에 실린 이라크의 현재 상황에 관한 투고, 논평, 연설 등의 모음집이다. 그의 작품은 8개의 유럽어로 번역되었다. Jabbar Yassin Hussin은 1992년부터 프랑스의 La Rochelle 근처에 살았었고 2003년 5월 프랑스 망명 생활 27년 만에 바그다드로 돌아갔다.

 

브라이칸

 

무하무드 알 브라이칸(Mahmud al-Buraykan 혹은 Mahmoud al-Buraikan: 1934-2002) 이라크의 시인. 바스라 근처 알 주바이르에서 태어났다.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이유때문에 자신의 시집이 출판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시들은 여러 앤솔로지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바스라에서 집을 털러들어온 강도들에게 살해당했다.

 

 ▒ 시: 빈 도시(영어)

 

 ▒ 시: 조용한 두려움의 노래(한글)

 

 

아말 알-주부리

 

아말 알-주부리(Amal al-Jubouri: 1967- ) 이라크의 시인. 바그다드 출생. 영어영문학을 공부한 뒤 이라크 텔레비젼 방송국에서 프로듀서로 일했다. 잡지 <알 이완>의 편집인. 1986년 이라크에서 첫번째 시집 Wine from Wounds을 발간한 후, 1994년에 두번째 시집  Words, Set Me Free!을 펴냈다. 이 시집은 주제 선택, 언어의 적절한 구사, 풍부한 상상력 등으로 당시 아랍 시문학계에서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신비주의에 심취하여 아랍의 고전적 신비주의 자 알 할라지에 관한 현대극을 번역하기도 했다. 1999년 영국 런던에서 시선집 Enheduanna을 펴냈다.

 

 ▒ 소개와 시(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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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영직/ 문학은 항복하지 않으리(한겨레21, 2003년 4월 4일, 453호)

 

 ▒ 임병필/ 오늘의 이라크 시를 읽는다(시경, 2003년 하반기호)

 

 ▒  [전쟁은 신을 생각하게 한다](화남, 2003)

 

 ▒ 이라크 여성작가들 

 

 ▒ The ravages of war: Modern Poetry in Translation (알 하람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