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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즈스탄(Kyrgyzstan)

  

 

 

아이트마토프

 

칭키스 아이트마토프(Chingiz Torekulovich Aitmatov: 1928- ): 키르기즈스탄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소설가. 탈라스 계곡의 쉐케르 출생. 그는 7대째 내려오는 마을 전통을 누가 무엇을 했는지까지 다 알았다.  할머니로부터 전통문화에 대한 교육을 자연스럽게 받았다. 훗날 이 경험은 그의 작품에 독특한 무늬를 새기게 했다. 그의 가족은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무진 애를 썼지만 지주의 횡포와 불운 때문에 번번이 실패했다. 설상가상으로 1938년 지역 당비서이자 모스크바에서 학생으로 있던 그의 아버지가 체포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런 이유로 학교 교육은 6년밖에 받지 못했지만,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14세의 나이에 지방 소비에뜨 서기 및 세무관이 되었다.(1943년-1952년) 그후 1966년까지는 낙농전문가로 근무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모스끄바에 있는 고리끼 문학대학을 졸업했다. 졸업후에는 프라우다지의 키르기즈스탄 지역 통신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1959년 공산당 입당. 그는 1958년 『자밀랴』를 발표하면서 작가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농촌의 인습에 반항하여 사랑과 행복을 추구하는 여성을 묘사한 대표작 [자밀라](1958)는 번역자인 프랑스 작가 아라공으로부터 격찬을 받아 1963년 레닌상을 받았다. 첫 장편인 [굴리사리여 안녕!]은 국가상을 받았다. 그는 1980년대 후반부터 고르바초프의 조언자로 활약하면서 현실 정치에도 깊이 관여하였고, 소비에뜨 연방 해체 후 조국인 키르기즈스탄 공화국에서 벨기에, 프랑스, 유네스코 대사를 역임했다. 그는 유럽 여러 나라와 일본 등지에서 각종 문학상을 받았다. 주요작품은 그 밖에 [최초의 교사(敎師)](1962), [하얀 배] [백년보다 긴 하루] [처형대] [후지야마 등반] 등이다. 우리나라에는 [백년보다 긴 하루]와 [후지야마 등반] [카산드라의 낙인] [하얀 배] [그해 겨울 소중했던 것 하나] [가까이 나에게로 더 가까이] 등 여러 권이 소개되었다. 그중 [백년보다 긴 하루]는 전설과 역사, 현실과 공상이 적절히 배합되어 화려하게 수놓아진 융단과도 같은 소설로서, 1980년대 초기에 러시아에서 있었던 많은 비판적 논쟁들을 극화한 것이다. 반사회주의적 요소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귀감으로 꼽힌다. 러시아 내 중앙아시아계 민족들이 지닌 문화와 가치관이 작가의 섬세한 문체를 통해 생생하게 펼쳐진다. 아이마토프는 현재 키르기즈스탄의 의회 멤버이자 EU, NATO, 벨기에 등의 대사로서 뷔르셀에서 살고 있다. 그는 러시아어와 키르기즈어 두 언어로 작품 활동을 해왔는데, 해가 갈수록 키르기즈어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는 형편이다.

 

 ▒ 칭키스 아이트마토프 소개 페이지(영어)

 

 ▒ 칭키스 아이트마토프 장편소설: 백년보다 긴 하루(한국어) 책소개 

 

 ▒ 칭키스 아이트마토프 장편소설: 하얀 배(한국어) 책소개 

 

 

오스모노프

 

알리큘 오스모노프(Alykul Osmonov: 1915-1950) 키리기즈스탄의 시인. 판필로브지역의 카프탈 아리크 마을에서 태어났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고아원에서 자랐다. 1929년부터 프룬제에서 사범학교에 다녔으나, 건강이 나빠 중퇴. 1936년까지 잡지 [공격]과 신문 [레닌소년]에서 편집일을 했다. 1939년부터 1940년까지는 키르키즈 소비에트작가동맹 총비서로 근무. 그후에는 전적으로 창작에만 전념했다. 첫 번째 시집 [새벽의 시]은 1935년에 출판되었다. 1939년에 작가동맹 회원이 되었다.1945년에 발간된 시집 [사랑]은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었다. 죽기 5년 동안에 네 권의 시집이 발행되었다. 번역자로서도 능력이 있어, 셰익스피어의 [오델로]를 번역하기도 했다. 레닌 콤소몰 문학상을 받은 최초의 키르키즈인이기도 한 그는 긴 투병생활 끝에 1950년 세상을 떠났다. 현재 키르키즈스탄에서는 그를 기리는 각종 기념사업이 벌어지고 있으며, 고향에는 박물관도 잘 지어져 있다. 화페에도 그의 초상이 새겨져 있을 정도이다.

 

 ▒ 오스모노프 소개 페이지(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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