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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국 2007-01-15 15:50:16 | 조회 : 6434
제      목  살색 크레파스는 더 이상 없다

살색 크레파스는 더 이상 없다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 이후 이런저런 이유로 외국 나들이를 한 게 벌써 몇 십 차례, 이제껏 여권만 서너 차례 바꾼 것 같다. 번성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거의 기여하는 바가 없는 나 같은 사람이 이 정도니 우리나라 국력이 얼마나 커졌는지 쉽게 짐작할 일이겠다.

그러는 동안 외국인들을 초청하는 일도 많아졌다. 십년 전 동료들과 더불어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이라는 작은 모임을 만들었는데, 그것을 시작으로 지금은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 ‘아시아문화네트워크’ 등 비슷한 성격을 지닌 모임에도 얼굴을 내밀고 있다.

이 글을 쓰기 바로 직전에도 ‘아시아문화네트워크’의 공동대표 자격으로 많은 외국인들과 함께 강릉으로 1박 2일 문화체험을 다녀오기도 했다. 이런저런 경험들이 새삼 내세울 자랑거리는 아니다. 그만큼 국제교류가 빈번해졌고, 나 역시 싫든 좋든 그런 관계망을 무시한 채 살기는 힘들게 되었다는 증거일 뿐이니까.

그런데 내가 맺은 그 관계망이란 게 좀 편협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여권에 찍힌 도장을 보자. 일본, 중국, 태국, 베트남, 몽골, 라오스, 캄보디아, 네팔, 필리핀, 인도네시아, 인도. 멀리는 타클라마칸 사막, 높게는 해발고도 6000m에 가까운 히말라야가 그 속에 포함되지만, 어쨌든 지리적 범주로 아시아를 벗어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아시아를 무대로 교류사업을 벌이고 있으니!

도대체 나는 왜 아시아에 죽자고 매달리는 것일까. 솔직히 나도 알프스를 바라보며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고 싶고, 암벽 등반 실력을 좀더 키워 저 황홀한 요세미티의 바위에 매달려 보고도 싶다. 하지만 나는 돈도 돈이지만 아직 그런 호사를 누릴 때가 아니라고 스스로 마음을 다잡곤 한다. 아시아는 나와 내 동료들에게 아직도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


“마음으로, 가슴으로 그들을 만나라!”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루룩 흐르는 후덥지근한 호치민시 탄손누트 공항 밖에서는 사돈의 팔촌까지 모인 것 같은 대가족이 호기심 1/3, 두려움 1/3, 안타까움 1/3의 심정으로 이별을 나눈다. 자카르타 공항 대합실에서는 조금은 촌스러운 트레이닝복을 입은 사람들이 단체로 출국 수속을 받는다. 그런 광경은 카트만두의 트리부반 공항에서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프놈펜은 어떤가. 예쁘게 화장한, 까무잡잡하고 앳된 얼굴의 처녀가 도무지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애써 옮긴다. 그 작고 여린 캄보디아 처녀에게는 어떤 꿈이,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우리는 이제 그게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한때 우리는 단일민족이 엄청난 자랑거리인 줄 알았다. 교과서에서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살색’ 크레파스는 더 이상 없다. 살색이 까무잡잡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면, 공장은 당장 문을 닫을 것이고, 농촌에서는 손주들의 재롱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웃음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 십년만 지나면 이런 데모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우리 아들딸들에게 국어 특별과외비를 지급하라!" 워낙 살색이 까무잡잡한데다가 하루 종일 논틀밭틀 뛰어다니며 일하느라 더욱 까맣게 된 동남 아시아계 어머니들이 인구 이만도 안 되어 지방자치체로서의 존립마저 위협받는 군의 군청 청사 밖에서 이런 데모를 벌이는 것을 상상해 보라! 나와 내 동료들이 하는 일은 말하자면 바로 이런 데모를 막아보자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저런 계기로 초청하는 아시아계 작가들에게 당연히 내 조국의 아름다운 산하, 잘나가는 한류의 고향, IT 강국의 참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러나 그와 더불어, 아니, 그 이상으로 나는 그들 나라에서 온 노동자들과 신부들이 내 조국에서 어떤 존재인지, 어떤 대접을 받는지 편견 없이 관찰하고 그 결과를 편견 없이 글로 써주기를 바란다.

작가란 존재가 대개 그렇듯이, 나 역시 ‘애국심’이 그다지 많은 편은 못된다. 하지만 아시아의 동료 작가들이 자기 나라로 돌아가 부정적인 글을 쓰는 것을 태연하게 바라볼 만큼 애국심이 없는 편도 아니다.

우리에게 동서양 지구촌 친구들과 만나고, 낯선 영토, 낯선 언어는 이제 피할 수 없는, 그러면서도 새로운 기회이자 새로운 도전이다. 어찌할 것인가. 내게 아주 결정적인 ‘비법’이 있는데, 알고 보면 지극히 단순하다.

“마음으로, 가슴으로 그들을 만나라!”

※ 외부 칼럼은 국정브리핑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국정브리핑 2006-11-20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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