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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 용 / 보 /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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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2008-06-20 10:13:44 | 조회 : 5012
제      목  거리로 나온 그들과 함께 지켜내리라
거리로 나온 그들과 함께 지켜내리라
  
촛불집회에 나갔다가 차를 긁었다. 촛불 탓이 아니다. 백 프로 내 탓이다. 촌에서 살며 주로 촌에서만 차를 몰다 보니 주차 실력이 엉망이다. 그날 후배 오피스텔 주차장에 차를 세웠는데, 집회를 마치고 와서 차를 빼려다가 차단기 몸통에 옆구리를 죽 긁고 말았다. 후배가 낄낄거리며 말했다. “형은 여전히 직진만 할 줄 알죠?”

그 말의 숨은 의미를 쉽게 부정하지 못한다. 그만큼 멍청하게 살아왔다는 뜻이겠다. 그러니 아들이 군대에 가 있는 나이가 되도록 데모하러 다니는 거 아니겠는가. 거리에는 나만큼 멍청한 이들이 수두룩하다. 앉다보니 이시영(시인)·도종환(시인) 선배 곁이다. 후배들이 강제로 채워 준 ‘몸자보’라는 게 영 어색해서 실실 웃음만 나는데, 문득 이시영 선배 곁으로 유모차 한 대가 보인다.

“선배님, 이제 하다하다 조런 간난장이 동지하고도 함께 데모를 하네요?”

선배가 고개를 돌려 ‘동지’의 정체를 파악하고는 미소만 짓는다. 선배가 누구시던가. 저 엄혹한 유신의 군홧발 아래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할 때, 광화문 네거리에서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이름으로 제일 먼저 닭장차를 탄 ‘투사’였다. 그후 1980, 1990년대를 거치는 동안 그의 인생 행로는 설명하지 않아도 자명한 것. 경찰서, 치안본부, 보안사, 안기부, 구치소…. 그리하여 이제 좀 조용히 시나 쓰면서 ‘문학적인’ 노후를 보내는가 싶었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해괴한 ‘춘사’란 말인가.

데모도 데모 나름이지, 산전수전 다 겪은 선배의 기를 꺾는 건 유모차에 탄 젖비린내 나는 동지만이 아니었다.

“미/친/소/는 너/나/먹/어!” 바로 뒤에 앉은 여중생 ‘동지’들이었다. 선배가 고개를 돌리다가 참으로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수그린다. 나 역시 감당이 잘 되지 않는다. 저토록 해맑고 예쁜 여중생 동지들, 어디에서 저토록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나오는 걸까. 광화문 시위대를 겨냥해 시민의 수면을 방해한 죄를 엄격히 물어야 한다는 어느 목사의 말이 떠오른다. 맞다. 저런 목소리라면 분명히 수면방해죄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잠은 그쪽만 못 잤는가. 한달 내도록 못 자고, 공부 못 하고, 일 못 한 채 거리로 나온 또 다른, 84%의 시민들은 어쩌란 말인가. 거기에 대해 책임을 지겠는가. 진다면, 나도 지겠다. 여중생 동지들 설득해 함께 감옥 가겠다.

“청소년들이 원래 그렇게 정치나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나요?”

“아뇨. 그동안 전혀 관심 없었어요.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 되면서, 광우병 소 그거 우리 먹는 거잖아요. 민영화도 정말 문제예요. 물 민영화 되면 어떡해요. 우리 빨래하러 다 빨래방 가야 해요?”

아, 거리로 나온 ‘동지들’은 다 알고 있다. 그렇다. 이건 비단 광우병만은 아니다. ‘아륀지’만도, ‘0교시’만도, ‘대운하’만도 아니다. 학원 빼먹고 PC방 갔다가 거리로 나온 여중생 동지, ‘뇌’에 아직 세상이라는 ‘개념’이 형성조차 되지 않은 유모차 동지, 싸우고 싸우며 참으로 아름다운 서정시를 지켜온 선배 동지, 그리고 아들 군대 보낸 나이가 되도록 정신 못 차리고 길바닥에 나앉은, 그 통에 난생 처음 뽑은 ‘아륀쥐색’ 예쁜 차(1000㏄ 경차)를 석 달 만에 작살낸 한 작가까지 모두가 다 아는 사실. 그건 이 정권 아래서는 더 이상 84% 국민의 행복이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여고생 동지들이 당당하게 외친다. “이번에 확실히 느낀 건요, 앞으로 정치에 절대로 무관심하지 말아야겠다는 거예요. 대통령 뽑을 때 나 하나쯤 하다가 이렇게 된 거잖아요. 정신 차리고 제대로 뽑아야 해요. 나도 이제 투표권 생기는데요, 꼭 투표할 거예요.”

6월, 서울 한복판은 누구도 예측 못한 민주주의의 거대한 실험장이다. 아무도 가보지 못했다 해서 그 길이 길 아니라고 말할 자 누구인가. 대의민주주의가 이제껏 우리를 너무 쉽게 평가했다. 우리는 다만 멍청한 한 표가 아니다. ‘촛불’은 무지막지한 산업사회의 한복판에서 제 목소리, 제 존재, 제 영혼을 속절없이 박탈당했던 ‘인간 영장류’의 진정한 자기 선언이다. 오늘 비록 이기지 못해도 좋다. 그렇더라도 오늘 이 거리가 결코 무의미한 ‘미래의 추억’만은 아닐 것이다. 내 영혼, 이 참혹한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멍청하게 직진만 하는 내 영혼을 내가, 오늘 거리로 나온 그들과 함께 지켜내리라.

[경향신문2008.06.09-작가회의 ‘촛불 집회’ 릴레이기고(1)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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