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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국 2008-09-17 11:31:27 | 조회 : 5394
제      목  소설가 김남일이 본 베트남 작가 바오닌

소설가 김남일이 본 베트남 작가 바오닌


“여러분이 실전에 단 하루만이라도 참전했다면, 평생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전쟁은 베트남 청년의 정수를 송두리째 앗아갔습니다. 30-40년의 공백은 불가피합니다.”

1969년, 평양 주재 베트남 대사관의 공보담당관을 아버지로 둔 열일곱 살의 청년 바오닌은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전쟁에 뛰어들었다. 특별할 게 전혀 없는 선택이었다. 할머니는 그에게 늘 말했다. 조국이 위험에 처했을 때 나가 싸우는 것은 베트남 청년의 자랑이라고. 그러나 전쟁은 한 청년의 모든 것을 앗아가버렸다. 폭우가 퍼붓는 밀림 속에서 그는 떠도는 영혼들의 울부짖음 소리를 들었고,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자신의 사랑과 꿈이 처참하게 찢겨나가는 것을 보았다. `영광의 제27 청년여단'의 영예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6년 뒤, 그는 사이공을 `해방'시키는 마지막 전투에도 참가했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단 하나, `전쟁의 슬픔'뿐이었다.

민족문학작가회의가 제6회 `세계작가와의 대화' 행사에 베트남 작가 바오닌을 부른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었다. 그는 아마 종전 후 공식적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한 최초의 베트남 작가가 아닐까 싶은데, 그런 실증적 사실보다 그가 단 한 편 번역된 소설로 우리 문학에 던진 충격이 훨씬 중요하다. 소설가 이문구 선생이 “우리 문단에도 과연 이만한 작품이 있었는지 스스로 돌아보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격조 높은 작품”이라고 평했듯이, <전쟁의 슬픔>은 양적으로 적지않은 우리 전쟁문학이 실은 얼마나 빈곤했는지 새삼 돌아보게 해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바오닌은 왜 글을 쓰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아주 간단하게 대답했다. “먹고 살기 위해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소설을 통해 한번도 이루지 못한 진정한 사랑을 꿈꿉니다.” 종전 후 시체처리반 생활을 마지막으로 제대한 그는 사실 아무것도 할 게 없었다.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전쟁이 그에게 안겨준 정신적인 공황을 치료하는 유일한 처방전이기도 했지만, 기나긴 전쟁 끝에 폐허만 남은 통일조국의 수도 하노이는 어떤 직업다운 직업도 줄 형편이 아니었던 것이다.

베트남 전쟁에 해병 청룡부대원으로 참전한 작가 황석영은 엎드려 사과를 청했다. 바오닌은 한국 최고의 작가가 수십년 세월 동안 지녔던 고통을 힘껏 껴안아 주었다. 그 순간, 그는 알았을 것이다. 베트남전쟁에 참여하기 전과 후, 한 예민한 청년의 우주가 얼마나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점을. 왜냐하면 그의 우주 역시 밀림 속에서 너무나도 크게 달라졌기 때문에.

상처와 고난을 겪었기 때문에 오히려 인간에 대한 사랑을 알게 되었다는 그는, 그러나 휘황찬란한 신촌의 밤거리를 보면서 우울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가난한 조국의 현실이 새삼 떠올라서였을까. 아니면 자본의 세계화가 결국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것이라면 도이머이(쇄신) 정책을 수행하는 조국의 미래도 마냥 밝지만은 않겠다는 우려 때문이었을까.

[한겨레 2000년 6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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