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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2008-10-17 09:53:41 | 조회 : 5049
제      목  한중일 중심 아시아 교류 위험한 발상 주변부 봐야

노벨문학상 맹종 말라
-한중일 중심 아시아 교류 위험한 발상 주변부 봐야

서쪽의 우랄산맥을 경계로 북쪽의 북극해, 동쪽의 태평양, 남쪽의 인도양, 남서쪽의 수에즈 지협으로 둘러싸인 인구 40억 명의 아시아는 세계 최대의 대륙이다. 상호교류를 통해 공통점을 확인하기에는 너무 크고 너무 다양하다. 역사와 종교가 다르고, 문화적 전통과 정치 경제적 환경도 서로 다르다. 이라크나 카자흐스탄과 교류하는 일은 아프리카나 남미에 있는 나라와 교류하는 일만큼이나 낯설다.

흔히 유교와 불교문화에서 비롯된 자연친화적 세계관을 아시아적 가치라고 말하곤 한다. 정말 그럴까. 중앙아시아와 서남아시아의 어떤 나라도 그런 동질성을 공유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한중일과 타이완, 동남아의 베트남에 국한된 한자문화권의 동질성일 뿐이다. 그렇다고 서구에 의해 이미지화된 인도의 신비주의를 아시아적 정체성으로 삼을 수 있을까. 혹은 서남아시아에서 중앙아시아로 이어지는 이슬람벨트의 종교적 신념체계를 기독교문화에 대응하는 아시아적 가치라고 말할 것인가.

언어의 다양성도 아시아 국가 간 교류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그래서인지 '아시아'를 내건 교류활동이 실제로는 권역별 교류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동북아시아에 위치한 한국과 중국, 일본이 주도하는 '아시아' 교류활동이 특히 그렇다. 여러 어려움을 생각하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지만 우려를 떨치기 어렵다.

한중일 중심의 '아시아' 교류가 위험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교류의 주체들이 직면한 객관적인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스스로를 너무나 넓은 스펙트럼을 지닌 '아시아'로 추상화시켜버린다는 점이다. 한중일의 작가들은 3국의 동질성을 강조하는 한편으로 서구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아시아의 역할과 가치를 역설한다. 한중일 세 나라는 한자와 유교문화를 근간으로 한 문화적 동질성을 지니고 있으니 틀린 말이 아니다. 20세기를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지게 만든 서구중심주의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아시아가 서구중심주의를 대체하기 위한 노력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한중일이 곧 아시아는 아니다. 일본은 스스로 비판하는 서구중심주의를 아시아에서 제일 먼저 습득하고 내면화해 아시아를 침략했다. 중국은 다가오는 아시아의 신질서를 이끌어갈 중심축이다. 아시아의 구질서와 신질서를 대표하는 이들 두 나라가 과연 단일한 대안세력이 될 수 있을까. 아시아가 비판해온 서구중심주의의 핵심은 패권주의다. 일본은 패권주의의 유산을 완전히 청산했으며, 중국은 패권주의와 다른 길을 가고 있는가.

물론 작가들은 정부가 아니고 정치인도 아니다. 국가를 대표해서 교류와 연대활동에 나선 것도 아니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의 작품과 작가적 실천을 통해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와 인류를 향해 발언하는 존재다. 서구중심주의를 비판하는 작가들이라면 아시아의 연대과정에서도 한중일 중심주의에 대한 각별한 자기경계가 필요하다. 동북아시아가 아시아를 대표할 수 없다. 아시아는 결코 하나가 아니다.

패권을 지닌 중심이 주변을 구원할 수 있다는 오만을 승인하는 순간 아시아 작가들의 연대는 존립의 근거가 사라진다. 아시아의 작가라면 중심이 주변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이 중심을 구원할 수 있다는 상상력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문학은 아시아의 신·구 패권을 대표하는 일본·중국 문학과 하나로 묶여지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유린당하고 배제된 아시아의 주변부 문학이 지닌 남루한 희망과 함께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을 때 한국문학은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올해도 한국을 비켜간 노벨문학상은 르 끌레지오에게 돌아갔다. 프랑스는 열세 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인구 40억이 넘는 아시아 대륙의 수상자를 모두 합쳐도 인구 6000만에 불과한 프랑스에 한참 못 미친다. 노벨문학상도 서구 중심적이다. 한국문학을 서구에 알리기 위한 교류활동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그러나 아니다. 노벨문학상은 문학을 평가하는 절대기준이 될 수 없고, 기웃거린다고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한국문학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배제된 아시아의 주변부와 더불어 스스로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국제신문2008.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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