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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2008-11-05 17:38:25 | 조회 : 4448
제      목  예술을 평가하는 잣대

예술을 평가하는 잣대  

미국 발 경제위기가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열린 미국 하원 청문회의 검증 내용은 사뭇 충격적이다. 청문회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무디스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 피치와 같은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세계적인 신용평가회사들이 자사의 이익을 위해 엉터리 신용평가를 일삼아왔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의 직원들이 주고받은 메신저의 내용은 그러한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 평가는 말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알아. 그 평가모델이 위험의 절반도 반영하지 못했어." 신용등급을 부여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내부 지적에 대한 응답은 '우리는 모든 것을 평가해야 하고, 소가 만든 상품이더라도 등급을 매겨야 한다'는 자조였다. 2006년에 스탠더드앤드푸어스 직원이 주고받은 이메일에는 '카드로 만든 집이 무너지기 전에 부자가 돼서 은퇴하기를 바라자'는 내용도 있다. 그때 이미 그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안고 있는 위험을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모기지 관련 증권에 부여한 등급은 AAA였다. 무디스의 한 직원은 모기지 관련 상품에 미심쩍은 등급을 매긴 뒤 임원에게 이런 이메일을 보냈다. '우리는 수입을 올리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

잘못된 평가에 따른 신용등급 부여는 미국의 금융 부실을 눈덩이처럼 불리고 세계경제를 위기로 몰아넣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지금 세계는 잘못된 평가가 야기하는 엄청난 결과를 함께 목격하고 있다. 그러나 잘못된 평가보다 더 위험한 것은 평가할 수 없는 것을 평가하는 일이다. 잘못된 평가는 원칙과 기준을 정확하게 적용하지 않아서 발생한 문제이기 때문에 바로잡으면 재발을 방지할 수 있다.

그러나 평가할 수 없는 것을 평가하는 오류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바로잡아지지 않는다. 잘못된 평가는 그 오류가 현실적으로 드러나지만 평가할 수 없는 것을 평가한 오류는 현실적으로 잘 드러나지도 않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지금 우리나라의 교육평가제도가 그렇다. 학생들의 서로 다른 재능을 단 하나의 자로 재고 있다. 다양한 재능을 가진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시대적 추세임에도 우리는 다양성과 창의성을 극단적으로 부정하는 획일적인 평가 기준을 오히려 강화해나가고 있다.

획일적인 대입 평가제도가 이제는 대학 교육과정에까지 연장되고 있다. 독자적이고 다양한 진로를 모색하며 전공에 깊이 몰입하는 대학생들보다 학점 얻기 쉬운 과목을 찾아다니며 취업준비에 몰두하는 학생들이 더 많다.

심지어 교수들도 논문 편수로 점수를 매긴다. 더 황당한 일도 있다. 창작을 가르치는 예술분야의 교수들까지 작품 '숫자'로 점수를 매긴다. 이런 계량적 평가기준을 적용하면 한 해 한 편의 영화를 찍는 영화연출전공 교수, 한 해 한 편의 장편소설을 내는 문예창작학과 교수, 한 해 한 번의 개인전을 여는 회화과 교수는 꼴찌를 하게 되어 있다.

한 해에 몇 편 영화를 찍고, 몇 권의 소설을 쓰는 교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몇 번의 개인전을 여는 교수의 그림은 어떤 수준일까. 그러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가능한가. 예술에서는 최고만이 전범이다. 최고의 도전과 최상의 성취를 가리지 못하는 평가는 예술에서 코미디일 뿐이다. 다른 분야는 어떤가. 봄부터 들판에서 땀 흘린 농부들이 가을걷이를 하는 결실의 계절에 제대로 된 평가를 다시 생각해본다.

[국민일보 2008.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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