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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국 2008-12-03 10:28:10 | 조회 : 7280
제      목  우리를 지탱하는 것들

우리를 지탱하는 것들  

지난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고향집에는 어머니가 혼자 사신다. 한 달에 한 번은 다녀와야지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두 달, 석 달에 한 번 경주행 고속버스를 탄다. 행정구역으로는 울산이지만 경주로 해서 가는 것이 더 가깝기 때문이다.

경주 터미널에 내리면 고향집으로 바로 가는 버스가 없다. 경주와 울산의 경계인 모화란 곳까지 가서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짐이 있을 때는 좀 불편하다. 흥정을 하면 이만 원에 택시를 탈 수 있다. 그래도 선뜻 택시를 타지 못한다.

그곳이 어머니의 땅이기 때문이다. 여든의 어머니는 지금도 버스를 타신다. 몸이 아파서 혼자 병원에 다녀와야 할 때도 택시를 타지 않는다. 호출 택시를 부르면 만오천 원에 편안하게 다녀올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어쩌다 경주에서 택시를 타면, 가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지난달에도 그랬다. 밤인데다 날씨마저 쌀쌀해서 택시를 타고 갔는데 차마 대문 앞까지 가지 못하고 마을 입구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갔다.

저녁을 차려놓고 기다리던 어머니는 값이 떨어진 배추를 걱정하고 있었다. 김장용 배추 값이 폭락해서 한 포기에 천 원도 안 하는데 그나마 사겠다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가뭄이 심했던 지난 가을 어머니가 날마다 물을 줘서 키운 삼백 포기의 배추 중에서 이십 포기를 팔아야 얻을 수 있는 돈을 나는 삼십 분의 편의를 위해 택시에 지불한 것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간 아버지의 산소 앞에는 마른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올해 너무 가뭄이 심해서 갈대도 키가 크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했다. 산천에 널린 풀 한 포기도 비와 바람과 햇빛의 간섭과 보살핌으로 자라고 꽃을 피우는 것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저 갈대보다 더 나약한 우리의 삶도 누군가의 기도와 희생과 사랑에 의해서 지탱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잘것없는 나라는 존재는 누구의 기도와 희생과 사랑으로 이 깜냥이나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이 세상은 얼마나 위험한 지뢰밭인가. 죽음이 한 뼘 옆으로 내 곁을 스쳐지나간 것이 한두 번이었던가. 동창회 일에 열심인 친구는 우리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30년도 되지 않은 세월 동안 벌써 저승에서 열리는 동기회에 참석하게 된 인원이 다섯 반 중에서 한 반이라고 했다.

위험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이렇게 간신히 살아올 수 있었던 이유가 나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나는 타자를 위해서 마음 쓰고, 땀 흘려 일하며 세상에 쌓아둔 선업이 별로 없다.

아버지의 산소에서 아직 시들지 않은 잡초를 뽑으며 어머니는 중얼거리셨다. 춥지요, 그래도 우리 애들 아무 탈 없이 살도록 보살펴주소. 쑥 뿌리를 뽑아내는 어머니의 굽은 손가락을 보며 나는 당신들의 기도와 노동과 사랑이 내 삶을 간신히 지탱시켜 왔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으로 부지런한 목수였던 아버지는 남의 집을 지으면서 집 주인보다 먼저 일을 시작하고 늦게 일을 마치는 사람이었다. 당신이 한 여분의 노동이 때로 내가 넘어져 망연히 주저앉아 있는 시간을 가려주어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주는 것이리라.

[국민일보 2008.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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