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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2008-12-15 09:53:04 | 조회 : 3674
제      목  관용의 정치, 증오의 정치

관용의 정치, 증오의 정치  
  

베트남의 지도자 호찌민이 사망한 때는 1969년이다. 그의 죽음은 베트남 전역을 슬픔에 잠기게 만들었다. 전국 각지에서 조문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북베트남의 모든 상점들이 철시를 했다. 그의 장례기간 베트남에서는 단 한 건의 절도사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도둑들마저 애도 휴업에 들어갔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일은 남베트남의 많은 상가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문을 닫았다는 사실이다. 당시, 베트남은 전쟁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던 때였고, 호찌민은 북베트남의 국가주석이었다. 그런데도 일부 남베트남의 언론들은 추모기사까지 내보냈다. 남베트남 정부도 그의 생애를 비방하는 논평을 내놓지 못했다. 민심이 그를 폄하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이 남베트남을 패망으로 몰아간 국론분열의 결정판처럼 선전되었다. 반공정신의 해이를 막기 위한 반면교사로 당시 남베트남의 분열상은 우리 사회에 인용되었다. 그러나 베트남전쟁을 단순히 공산주의 대 자유주의 대결로만 받아들이는 것은 베트남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 결여에서 비롯되었다. 여전히 우리가 모르는 사실은 북베트남의 승리는 공산주의의 승리라기보다 호찌민의 승리라는 점이다.

공산주의를 거부하면서도 호찌민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념과 체제를 놓고 양극단으로 나뉜 사람들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지지와 신뢰를 받을 수 있었던 호찌민의 힘은 무엇이었을까. 베트남인들이 호찌민에게서 느끼는 매혹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관용의 정치'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삶에 대단히 엄격하고 철저한 사람이었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 바쳤지만 그는 어떠한 특별대접도 거부하며 평범하고 가난한 베트남인들과 조금도 다름없이 살았다. 그러면서도 상대에게는 관대했다.

베트남 독립 직후, 프랑스와 일본에 협력했던 인사들이 대거 체포되었다. 그중에는 프랑스 식민지 정권 아래에서 고위관리를 지낸 응오 딘 지엠도 포함되어 있었다. 뒷날 남베트남의 대통령이 되는 응오 딘 지엠이 석방된 건 호찌민이 내린 지시에 의해서였다. 응오 딘 지엠의 아버지가 베트남의 독립을 위해 일한 공로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그에게 독립된 베트남을 위해 일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역사가들은 이를 두고 역사의 아이러니를 이야기하곤 한다. 호찌민이 베푼 관용이 생애의 가장 큰 적이 되어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아이러니는 그 적이 바로 호찌민을 가장 빛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회주의 정권의 지도자들이 자본가뿐만 아니라 같은 이념을 지닌 정적까지 온갖 명분으로 제거하고 권력의 독점을 추구했지만 호찌민은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심지어 멸망한 옛 왕족과 지주들마저도 명예롭게 새로운 체제에 참여할 기회를 열어주었다. 비록 그의 의지가 관철되지 못했지만 그는 토지몰수가 아니라 토지헌납 정책을 통해 농민들에게 땅을 분배하려고 했다. 베트남 전쟁의 진정한 승자는 북베트남의 무력도 공산주의 이념도 아닌 호찌민의 정신, 분열과 증오를 멀리하고 통합과 관용을 지향한 지도력이었다.

오늘의 한국 정치지도자들, 특히 국정을 책임진 대통령께서 한 번쯤 호찌민이 무엇 때문에 아직도 베트남인들의 절대적인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지 생각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가장 큰 아쉬움은 관용과 포용력이 미흡했다는 점이다. 바꾸고 바꾼 내각과 청와대 비서진이 동네 계모임 같다며 한숨을 내쉰 사람들의 다수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투표했던 사람들이었다.

대통령은 국가의 최고 권력자다. 최고 지도자가 옹색해지면 나라가 옹색해지는 법이다. 유모차 부대라 불렸던 주부들을 불러다 조사하고 법원에 넘기는 모습은 참 보기 민망한 일이다. 상처 입고 위축된 국민의 마음을 감싸고 풀어주는 일에 나서야 할 사람은 대통령일 수 밖에 없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정부의 정책에 대한 실망과 반대를 표시한 일로 처벌받거나 불편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를 불문에 부치는 따뜻한 용기를 기대한다. 우리에게 화급한 건 반목이 아닌 통합이다. 그것을 위해 필요한 것은 증오가 아닌 관용이다.

[국제신문2008.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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