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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국 2009-01-22 13:35:06 | 조회 : 4714
제      목  팔레스타인의 눈물
팔레스타인의 눈물
-이스라엘의 야만적 폭격, 우리 양심을 아프게 한다

아다니아 쉬블리는 발랄하고 쾌활한 팔레스타인의 젊은 여성작가다. 가자지구 폭격 뉴스를 볼 때마다 그녀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녀는 오늘 또 어떻게 이 폭격을 견뎌내고 있을까.

뉴스는 매일 되풀이되는 폭격을 중계 방송하듯 내보내고 있다. 청년들이, 아이와 여자와 노인들이 속수무책 죽어가고 있다. 무력사용의 즉각 중단을 요구하는 유엔의 결의문에 이스라엘은 아랑곳없다. 안하무인이다.

이 용서받을 수 없는 야만적 폭격이 21세기의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벌어지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너무도 태연하게 이 야만을 지켜보고 있는 우리의 무감각이다. 진정으로 슬픈 일은 엄연히 '현재 진행형'인 이 일방적인 폭격이 하도 자주 재방송돼 아득한 옛 뉴스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다. 팔레스타인은 어제도, 그제도, 한 달 전에도, 한 해 전에도, 10 년 전에도, 30년 전에도 폭격을 당했다. 그래서 오늘 이 폭격이 어제의 그 폭격과도 비슷하고 십년 전의 그 폭격과도 비슷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오늘의 이 폭격에서 죽어가는 사람은 어제의 그 폭격으로 죽은 사람도, 10년 전의 그 폭격으로 죽은 사람도 아니다.

우리가 흔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라고 알고 있는 사태의 진실은 전쟁도, 분쟁도 아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무력을 자랑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군사작전 대상은 기껏 해야 낡은 개인화기를 지닌 ㅂ민병대나 돌멩이를 던지는 소년들이다. 팔레스타인 작가들의 산문집 '팔레스타인의 눈물'을 엮은 오수연은 가자지구에서 날마다 벌어지고 있는 일은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인 학살이라고 증언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물러설 곳도 피할 곳도 없다. 국경 한 쪽은 이스라엘이 만든 거대한 분리장벽이 막고 있고, 다른 한쪽은 미국의 지원을 받는 이집트 군대가 지키고 섰다. 바다에는 포탄을 퍼붓는 이스라엘 함대가 버티고 있다. 그들의 포위를 뚫어줄 유일한 통로는 인류의 양심뿐이다. 포위된 채 죽어가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출구를 열어주기 위해 세계의 양심들이 겨울 거리로 나서고 있다.

고난의 땅, 삶의 최전선에서 지켜낸 인간의 존엄과 품격에 관한 문학적 기록인 '팔레스타인의 눈물'에 실린 아다니아 쉬블리의 글은 우리의 양심을 너무나 아프게 한다.

"밤이다. 군인들이 나를 세운다. 한 명이 내게 왜 신분증이 아니라 여권을 갖고 다니느냐고 묻는다. 내가 답한다. 나는 자유로우니까. 그가 다시 묻는다. 내가 다시 답한다. 나는 자유로우니까, 나는 자유로우니까, 나는 자유로우니까, 나는 자유로우니까. 그저 그뿐이다. 나는 자유로우니까. 그가 내게 한쪽에 서 있으라고 한다. 내가 소리를 지르고, 지르고, 또 지른다. 그저 그럴 뿐이다. 미친 여자처럼 소리를 지른다. 나는 자유로우니까…."

"집에서 나가기가 무섭다. 너무나 무서워서 숨이 막힐 지경이다. 공포가 내 이마와 눈과 코에 몰려오고, 목구멍이 조여 온다. 이 공포를 끝장내려면 목을 자르는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다니아 쉬블리의 글을 읽으며 나는 한없이 밝고 예쁘게 웃던 그녀의 얼굴을 떠올린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삶은 늘 죽음과 함께 있다. 오늘 저녁을 무사히 먹을 수 있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난해 만났던 마흐무드 아부 하쉬하쉬는 너무나 예민하고 여려 보이는 젊은 시인이었다. 늘 미소를 잃지 않던, 전쟁과 어울리는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그의 시 '사과'를 보고 나서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깜빡 잊고 마저 먹지 않은 반쪽의 사과 떠올리고/ 현관에서 되돌아왔네/ 이빨 자욱 선연히 남은 사과, 끝내지 못한 채 죽을까 두려웠네/ 우리 어머니 흐느낌 그치려 하지 않았네

오늘도 뉴스는 폐허가 되어가는 가자지구를 보여주고 있다. 가자지구를 향해 발사되는 미사일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 소녀가 포함된 이스라엘인들의 얼굴 위로 자꾸만 아다니아 쉬블리와 아부 하쉬하쉬의 얼굴이 겹쳐진다. 이 젊은 작가들은 여전히 살아남아서 '그토록 처절한 이야기를 이토록 아름답고 격조 높게' 쓴 글을 인류의 머리 위로 쏘아 올릴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우리는 또 그 글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국제신문2009.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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