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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2009-04-02 09:59:35 | 조회 : 3522
제      목  한 장부의 생애를 생각하며

한 장부의 생애를 생각하며


겨울의 끝자락이다. 가슴을 시리게 만드는 만주의 바람 소리를 떠올리며 한 풍운아의 생애를 생각한다. 그는 장부답게 살다 장부답게 생을 마감했다. 150년 전 안동 권문세가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가야산으로 들어가 의병 투쟁에 나섰다.

그러나 구식 무기로 무장한 의병들은 신식 무기를 갖춘 일본군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변화하는 세계에 대한 자신의 무지를 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서양의 신학문을 맹렬하게 섭렵한 그는 먼저 봉건적 신분제도 타파를 선언했다. 자신이 거느리던 노비들을 해방시키고 노비문서를 아예 불태워 버렸다. 뒤이어 신학문을 가르치는 학교를 세우고 후진양성에 힘을 기울이며 민족자강운동을 벌여 나갔다.

그러나 그의 안간힘에도 나라는 일본의 수중에 완전히 떨어졌다. 1910년, 그는 의분을 참지 못하고 상소를 올려 나라를 팔아먹은 송병준, 이용구 등 역적 무리들의 목을 베라고 주장했지만 이미 모든 것이 늦어버린 다음이었다. 그는 일제의 손이 닿지 않는 만주 땅에 조국광복 운동의 기지를 건설하기로 결심했다. 90칸이 넘는 고대광실 같은 집과 조상들이 잠들어 있는 선산을 등지고 떠나는 심정이 어떠했을 것인가. 그의 결심을 은밀히 전해들은 50여 가구가 함께 따라 나섰다.

그는 자기 평생은 물론 자손 대대로 편히 먹고살 수 있는 전답을 처분하여 기꺼이 광복 운동의 자금으로 사용하였다. 무장투쟁의 산실이었던 '신흥강습소'와 그 후신인 '신흥무관학교', 일제를 상대하기 위한 군사조직인 '군정부'와 '서로군정서'의 가장 큰 후견인이 바로 그였다.

1925년, 이승만 대통령을 탄핵하고 국무령중심제로 개편한 상해임시정부의 의정원은 초대 국무령을 선출했다. 좌우 분열과 파벌간의 갈등을 수습하고 임시정부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사심 없는 지도자가 필요했다. 의정원은 뜻밖에도 상해의 명망가가 아니라 거리가 먼 만주에서 일하고 있던 그를 국무령으로 선출했다. 그의 애국적 순정에 대한 신망은 좌와 우, 파벌을 넘어 통용되었던 것이다.

"내가 늙은 몸으로 어찌 허영에 몸을 굽히겠는가"라며 완강하게 사양하던 그는 주변의 간곡한 권유를 받아들여 상해로 나가 국무령에 취임했다. 그는 임시정부 강화를 위해 전력을 기울였지만 이념과 정치적 갈등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번번이 장벽에 부딪혔다. 그는 반 년만에 국무령 자리를 스스로 내놓고 홀연히 만주의 동지들 곁으로 돌아오며 이렇게 말했다. "국무령을 맡은 것은 통합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는데 그 희망이 보이지 않는데 내 어찌 더 이 자리에 머물겠는가."

돌아간 만주도 그에게 위로가 되지 못했다. 만주에 발을 들여놓은 일본 관동군의 위세가 나날이 커지고, 다른 한편에서는 마적 떼가 우리 동포들을 괴롭혔다.

특히 대한독립군단 참모총장을 지낸 신흥무관학교 교장 이장녕을 비롯한 절친한 동지들이 마적들에게 살해당하자 그는 스스로 곡기를 끊었다. 냉수만 마시며 쓰러져 누운 그를 만나기 위해 안동에서 동생 이상동이 달려왔다. 정든 집 부러울 것 없는 전답을 두고 만주에서 죽어가는 형을 붙잡고 이상동은 너무나 가슴 아파했다. 눈물을 흘리면서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아우에게 돌아온 그의 대답은 담담했다. "인생은 다할 때가 있거늘 무슨 개의할 것이 있겠는가? 장부가 나라를 찾겠다고 출가해서 피맺힌 한을 풀지 못하였으니 장차 어떻게 고개를 들고 선조의 혼령을 대하겠느냐."

그와 함께 만주에서 항일운동을 펼쳐온 아들에게 남긴 유언은 언제 보아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국토를 회복하기 전에는 내 해골을 고국에 싣고 돌아가서는 안 되니, 우선 이곳에 묻어 두고서 때를 기다리도록 하라. 조국이 광복되거든 내 유해를 유지에나마 싸서 조상 발치에 묻어라."

나라가 어렵다. 겨울이 끝나가지만 사람들의 움츠린 가슴은 펴질 기미가 없다. 나라가 이렇게 어려운데도 기대고 싶은 이 시대의 지도자가 떠오르지 않는다. 대신 만주벌판에서 생을 마감한 한 장부의 생애를 생각한다. 그의 이름은 이상룡이다.

[국제신문 2009.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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