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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2009-06-02 14:01:22 | 조회 : 4435
제      목  한 사람만이 울 수 있다
한 사람만이 울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떠났다. 더불어,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 지난 한 주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겼다. 100만명이 봉하마을을 찾았다. 수백만명이 전국 곳곳의 분향소를 조문했다.

그를 떠나보낸 다음에야 우리가 느끼는 이 슬픔과 충격의 실체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덕수궁 앞에 마련된 시민 분향소를 찾아 네댓 시간을 줄 서서 기다리는 시민들은 말이 없었다. 빈 시청 광장을 경호하기 위해 삼엄하게 포진한 경찰 버스를 바라보며 사람들은 입술을 깨물었다. 덕수궁 귀퉁이 노상에서 조문객을 맞이하는 그의 영정 앞에 이르러 비로소 우리는 그가 선, 그가 섰던 자리를 확실히 보았다.

사람들은 그를 승부사라고 말했으며, 그의 죽음을 그가 던진 마지막 승부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아니다. 그는 우리 사회의 주류가 만든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르지 않고 자기 자신의 길을 간 비주류였을 뿐이다. 주류 사회의 내비게이션은 그럴 때마다 경로를 이탈했다고 반복하며 유턴을 요구했다. 승부를 청한 것은 죽어서도 광장을 차지하지 못하고 주변부로 밀려나야 한 그가 아니었다.

우리는 이제 아무도 모르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이 목숨을 던져서 증명하려고 했던 것은 자신의 진정과 결백이 아니라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었던’ 한 시대의 진정성이었다. 1980년대에 장전된 더 나은 가치를 위한 용기와 희생의 에너지는 마지막 열정으로 노무현의 시대를 만들었지만 더 이상 그것을 밀고 나갈 여력이 없었다.

노무현 시대에 출현한 새롭고도 성숙한 에너지가 있다면 그것은 강금원 회장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지난 시대에 지불한 채권을 회수해갔지만 여전히 역사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 헌신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었다. 그 아주 드문 사람이 강금원이었다.

전라도에서 태어나 공고를 졸업하고 부산에서 사업을 했던 그는 지역 차별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정치인 노무현이 편승하기만 하면 되는 국회의원 자리를 버리고 지역주의와 정면대결을 선언했을 때 그는 노무현을 찾아가 후원 의사를 밝히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정치하는 사람에게 눈곱만큼도 신세질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날 이후 그는 노무현을 변함없이 후원했다. 노무현으로부터 사랑이 아닌 존경을 받았던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재임 기간에 단 한 치의 사업도 확장하지 않았다. 그가 권력을 업고 하려들면 재벌 기업으로 발돋움하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권을 챙기는 대신 자기 재산으로, 노무현을 위해 뛰다가 백수가 된 사람들의 생계비를 일일이 지원해주었다. 잘못된 돈을 받고 사고 칠까봐.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말에 강금원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퇴임 후 대통령 옆에 누가 남아있는지 두고 봐라. 지금은 모두가 다 인간적 의리를 지킬 것처럼 말하지만 그런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강금원 같은 이가 열명만 있어도 노무현 정부가 능멸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와 같은 이가 백명만 있어도 세상이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정의를 위해 손해를 감수하며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 이들만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떠난 어제, 강금원 회장 외에 아무도 울지 않았기를 바랐다.

이 참극에 대해 책임이 있는 이는 자책감에 빠진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더 나은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일이 이제 우리 앞에 남아있다.

[경향신문2009.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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