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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2009-07-10 10:44:59 | 조회 : 3878
제      목  '승부'는 이제 우리의 몫이다

'승부'는 이제 우리의 몫이다
  

불굴의 승부사. 많은 이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그는 선택의 순간을 맞이했을 때마다 무모하리만큼 위험한 승부수를 던졌다. 안전한 승부는 승부가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전부를 걸고 승부를 걸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의 승부가 빛났던 것은 혼신을 다해 얻어낸 소중한 것들을 남김없이 걸었기 때문이다.

상고 출신으로 독학을 통해 판사 변호사가 되기는 쉽지 않았다. 그는 안락한 변호사 사무실을 버리고 거리의 투사가 되었다. 편승하기만 하면 거머쥘 수 있는 국회의원 자리를 마다하고 지역주의와 정면승부를 선택했다. 기적처럼 청와대에 들어갔지만 수족으로 부릴 수 있는 검찰과 정보기관을 국민의 손에 돌려주었다. 타협하기만 하면 오순도순 지낼 수 있는 언론권력 앞에 굴복하지 않았다.

위험한 승부는 승률이 높지 않다. 그 역시 많이 패배하고 아주 가끔 이겼다. 그러나 그는 승리하면서 빛났을 뿐만 아니라 패배하면서도 아름다웠다. 그의 승리가 빛났던 것은, 그의 말대로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얻어낸 성공이었기 때문이다. 패배마저도 아름다웠던 것은 그의 패배가 불의와 타협하지 않은 결과였기 때문이다.

그는 패배를 통해 승리하고, 버림으로써 얻을 줄 아는 진정한 승부사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러 그의 죽음을 야비한 권력과 매정한 방관자들을 상대로 그가 던진 마지막 승부수라고 말한다. 아주 틀린 말이 아닐지 모른다. 자신의 고향마을로 내려가 경운기를 몰며 농사를 짓고, 때로 자전거 뒷자리에 손자를 태우고 농로를 달리며 살려던 전직 대통령을 욕보이고 싶어하던 사람들은 이제 어떤 방법으로도 그를 욕보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과연 그가 던진 마지막 승부수였을까. 아니다. 그는 승부를 거부했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승부를 거부했다. 자신이 맡아야 했던 승부를 더 이상 떠맡기를 거부한 것이다. 그의 승부는 한 번도 그 자신만의 것이 아니었다. 힘없지만 의롭고자 했던 사람들을 대신하는 승부였다.

그가 승부를 거부함으로써 이제 한 시대는 완전히 막을 내렸다. 한 시대의 에너지도 완전히 소진되었다. 그와 함께 막을 내린 시대는 80년대이며, 이제 완전히 소진되어버린 것은 80년대의 역사적 에너지다. 80년대가 만들어낸 역사적 에너지의 실체는 도전과 희생이었다. 난공불락으로 보이는 군사독재에 도전했던 용기,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자기 한 몸을 기꺼이 던졌던 희생정신이 80년대를 위대한 시대로 만들었다.

그러한 80년대의 에너지가 마지막으로 불꽃처럼 타오르며 노무현 대통령의 시대를 만들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80년대의 에너지는 노무현시대를 끌고 가기에도 벅찼다.

더 이상 더 나은 이상을 위해 도전할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더 나은 세상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대신 신자유주의가 운명이라고 말하며, 앞장서서 선도했던 노무현 정부의 한계는 우리 시대의 한계였다. 치사한 공격의 빌미를 제공한 노무현 정부의 허물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꿈을 잊거나, 잃어버린 80년대 세대 모두의 허물이다. 80년대 세대는 더 이상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려고 하지 않았다. 자신이 차지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차지하지 말아야 할 것까지 차지하려고 기웃거리면서 80년대 세대의 힘은 바닥이 났다.

80년대 세대는 이미 지향해야 할 가치보다 지켜야 할 것이 너무 많은 세대가 되어 버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승부를 거부하고 떠난 의미를 그의 정신적 동지들이라고 할 80년대 세대는 깊이 되돌아보아야 한다. 원망하지 말라고 한 그의 말이 사무치고 아프다. 그에게 가해진 압박은 과연 정당한 권력의 행사였는가. 그것을 묵인하고 방관한 정치는 정당한 것인가. 그러한 정치를 나무라고 탓하기는커녕 오히려 권력에 편승하려는 부끄러운 지식인들과 언론인들의 행태는 용납될 수 있는 것인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비겁이다.

이제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승부사의 몫은 살아남은 자들의 것이 되었다. 스스로 희생하지 않고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에너지는 스스로 희생하는 사람들 속에서만 발생한다. 새로운 에너지의 출현이 간절하다. 가신 이의 명복을 삼가 빈다.

[국제신문2009.05.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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