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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현석 2007-12-05 00:15:32 | 조회 : 5034
제      목  작지만 아름다운 미술관에서
작지만 아름다운 미술관에서

살아서보다 죽어서 더 큰 존경을 받는 인물은 드물다. 그 드문 사람의 하나가 호찌민이다. 베트남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치고 국가주석으로 나라를 이끌었던 이 사람은 평생을 열 평 남짓한 목조주택에서 살다가 몇 권의 책 이외에 아무런 유산을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유서를 통해 자신으로 인해 '인민의 시간과 재산'을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간소하게 장례를 치르고, 자신의 시신은 화장하여 베트남의 남부와 중부, 북부 세 곳에 나누어 뿌리라고 했다. 자신을 기념하는 어떠한 형상물도 만들지 말라는 유언도 남겼다. 그러나 이 유언은 지켜지지 않았다.

호찌민시의 인민위원회 앞에 있는 그의 동상은 베트남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는 장소 중에서 빠지지 않는 명소가 되었다. 아이를 안고 앉아있는 호찌민의 이 동상은 매우 인상적이다. 호찌민이란 한 인간의 삶과 내면을 이토록 압축적으로 드러낼 수 있었던 예술적 재능의 소유자는 누구일까. 호찌민 평전을 쓰기 위해 취재하는 과정에서 이 동상을 만든 조각가를 알아보다가 나는 작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미술관 하나를 발견했다.

디엡 민 쩌우, 그는 인도차이나미술대학을 나온 당대 베트남 최고의 인물화가였다. 나는 수소문 끝에 호찌민시의 우옌 딘 찌에우 거리에 있는, 작지만 정갈한 갤러리 하나를 찾아냈다. 그가 살았던 집의 1층과 뜰을 개조해서 만든 이 갤러리의 그림들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호찌민의 조형물을 만든 사람의 것이라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그림들이 두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당대 최고의 인물화가였다는 얘기는 이미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의 그림 거의 대부분이 빼어난 미색을 지닌 젊은 여성들일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젊은 시절 디엡 민 쩌우가 자신의 예술적 정열을 쏟아부었던 대상은 아름다운 여성들이었다. 그의 화폭에 등장한 소녀와 여인들은, 디엡 민 쩌우의 화폭에 올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대단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그의 운명은 1945년 급변했다. 베트남은 8월 항쟁을 통해 일본을 물리치고 독립을 쟁취했다. 그러나 이듬해 프랑스는 일본에게 빼앗겼던 옛 식민지를 되찾겠다고 군대를 이끌고 베트남으로 돌아왔다. 다시 식민지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싸울 것인가. 베트남은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식민지로 돌아가는 쪽을 선택한 사람들은 프랑스의 우산 속으로 들어갔다. 싸우기로 선택한 사람들은 호찌민의 깃발아래 결집했다.

호찌민은 프랑스의 재침략에 맞선 전 인민의 항전을 호소했다. 지식인과 예술가들을 향해서도 특별히 호소했다.

"잠시 붓과 먹을 미뤄두고 항전에 나서자!"

1946년, 디엡 민 쩌우는 호찌민의 호소에 응답하여 붓과 먹을 미뤄두고 사이공을 떠나 항전구로 들어가 먹이 아닌 피로 조국의 독립과 통일을 향한 소망을 그렸다.

칼로 그은 왼쪽 팔뚝에서 솟구친 피로 그린 한 폭의 그림, '호아저씨와 중·남·북의 세 아이들'은 항전을 호소한 호찌민에 대한 디엡 민 쩌우의 전폭적인 지지선언이었다. 피로 그려졌으나 처절하기보다 간절한 이 그림은 만 문장의 글보다 더 강렬한 선동이 되어 베트남을 울게 만들었다.

그리고 4년 뒤인 1951년 디엡 민 쩌우는 호찌민과 함께 여섯 달을 같이 생활하게 되었다. 그는 항불전쟁 기간 내내 평민들이 사는 집보다 더 허름한 초가를 전전하며 평민들보다 나은 단 한 끼의 식사도 수용하지 않았던 호찌민의 일상을 지켜보았다. 그러면서도 예술의 가치를 높이 인정하고 예술가를 누구보다 존중할 줄 알던 이 늙은 지도자에게 그는 매료되었다. 호찌민이 서거하자 디엡 민 쩌우는 식음을 전폐하고 사흘 밤낮을 울면서 평생을 가난하게 살다간 늙은 지도자를 기리는 조형물을 만들었다.

알려지지 않은 이 작은 미술관에서 나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것을 통해서 모든 것을 얻었던 한 위대한 지도자와 양심에 따라 개인의 영예를 버리고 목숨을 걸 줄 알았던 한 예술가의 만남을 목격하고, 숙연했다.

[국제신문2007.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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