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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2008-08-06 11:55:02 | 조회 : 3630
제      목   택시와 아고라
택시와 아고라
-촛불은 보여줬다 진화하는 인터넷을

우리나라의 작가들은 축복받았다. 도무지 서사의 샘이 마를 날이 없다. 아니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작가들만큼 악조건에 처한 작가들도 없다. 소설을 압도하는 드라마가 일상에서 수시로 펼쳐진다.

지난 두 달간 이어진 촛불집회에 필적할 규모와 역동성을 지닌 소설을 기대하기란 '대략난감'하다. 매일같이 안방으로 찾아와 간택을 기다리는 어떤 TV드라마도 지난 대선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반년에 걸쳐 한국사회가 펼쳐 보인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할 수 없다.

마침내 정부가 관보에 고시를 강행하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되었다. 이것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마지막 수순인지 또 한 번의 반전을 위한 극적 장치인지 속단하기는 어렵다. 아직 종영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촛불집회에 대해서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이른지도 모른다. 그러나 TV드라마가 연장편성된다고 해서 주제와 메시지가 바뀌지 않는 것처럼 촛불집회가 여기서 막을 내린다고 해서 촛불집회에 담긴 의미와 메시지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촛불집회가 생산해낸 수많은 신화와 에피소드들만큼이나 그것에 대한 사회적 맥락에 대한 해석도 다양하고 분분하다.

여론이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에서 형성되었다는 것, 이것이 이번 촛불시국의 가장 큰 특징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토론의 성지'를 자임한 아고라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소통문화의 출현은 놀라운 것이었다. 정부의 수장이 '양초는 누구 돈으로 샀는지 알아보라'는 것을 시작으로 '신뢰할 수 없는 온라인의 여론은 독'이라고 한 것에 이르기까지, 처음부터 지금까지 정부가 계속 헛다리를 짚은 원인도 온라인에서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소통문화에 대해 철저히 무지했기 때문이다.

지난 총선까지 우리나라에서 여론전파력이 가장 강한 집단은 택시기사들이었다. 아주 다양한 사람들과 접촉하며 다채로운 정보를 재생산하는 택시기사들은 가장 부지런한 정치사회 평론가들이었다.

그러나 이번 촛불시국에서 택시기사들은 정치사회 평론가로서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택시기사들은 촛불이 어디서 시작되어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이 초유의 사태 앞에서 그들도 나 못지않게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촛불의 진원지는 온라인이었고, 나도 택시기사도 인터넷 공간 밖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인터넷 공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일까. 대답을 얻기 위해서는 일찌감치 결별을 선언했던 인터넷 공간에 제 발로 찾아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한때 잠시 드나들다 '소모적인 정보와 무책임한 감정의 배출구'라고 정리하고, 학생들의 과제물도 메일로 받지 않던 나였다.

며칠 만에 아고라가 얼마나 치열한 토론의 광장인지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공간에서는 나이와 계급장, 가방끈이 통하지 않는다. 허풍과 선동도 통하지 않는다. 오로지 실력만이 통하는 중원의 무림이 거기에 있다. 허술하게 칼을 뽑았다가는 바람을 가르는 어느 칼에 일격을 당하고 쓰러질지 모르는 삼엄한 곳이다. 오로지 설득력만이 힘을 얻는다. 설득력을 결여한 주장은 1분에 수십 개씩 올라오는 토론방에서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하염없이 뒤로 밀려난다. 반대로 여러 페이지에 걸친 긴 글도 설득력을 획득하면 수천 건의 댓글과 수만 건의 추천을 받으며 당당히 베스트로 부상한다. 베스트에 오른 글은 수십만 명의 독자를 간단히 불러 모은다.

지금까지 정치사회적인 토론은 주로 가족, 친구, 동창, 직장동료들 사이에서 이루어져 왔다. 그 토론에서는 의견 그 자체 못지않게 관계에 대한 고려가 작용한다. 자칫 서로 불편해질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하고 피한다. 그러나 온라인에서는 오로지 의견 그 자체의 정당성과 현실성만으로 승부한다는 점에서 오프라인보다 명백히 '생산적'이고 '선진적'이다. 온라인의 가장 큰 폐해로 꼽혀왔던 익명성에 따른 무책임과 무례를 극복한 것도 아고라가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요인이었다. 최근 디시인사이드에서 활동하다 아고라로 옮긴 한 네티즌은 "아고라에 처음 와서 가장 놀란 것은 존댓말을 쓰는 인터넷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었다"고 고백했다. 온라인은 지금 스스로의 문제와 한계를 빠르게 극복하면서 오프라인을 움직이는 쌍방향 소통의 광장으로 급격히 진화하고 있다. 이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사람은 이제 오프라인에서도 미아가 될 것이다. 나는 내가 그 미아가 될까 사뭇 두렵다.

[국제신문2008.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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