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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2008-02-13 10:56:15 | 조회 : 4962
제      목  재능의 다른 이름
재능의 다른 이름

영어가 또 난리다. 새 정부의 출범을 준비하는 인수위원회가 어느새 영어교육 강화위원회로 바뀌어버린 느낌이다. 우리 교육의 문제가 영어에서 비롯된 것인가. 아니, 다음 정부가 해결해야 할 우리 사회의 최대 현안이 영어였던가.

교육의 목표는 자라나는 세대가 자신의 창조적인 개성을 키워가면서 품격있는 인간으로 성숙해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 교육의 문제는 교육과정이 인간적 성숙을 뒷받침해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개성이 희미해진다는 데 있다. 지나간 물량적 개발의 시대와 달리 창의력이 곧 경쟁력인 오늘날 창조적 개성을 억압하고 학생들을 점수 따는 기계로 전락시키는 우리 교육의 결함은 치명적이다. 자라나는 세대들을 과중한 수업, 거기에 더한 학원, 과외의 부담으로부터 어떻게 자유롭게 만들어줄 것인가, 여기에 우리의 관심이 모아져야 한다.

대학입시 제도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지금 여러 대학들, 특히 서울의 주요 대학들은 학생선발권을 대학에 넘기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재 대학교육의 문제가 학생선발권이 대학교에 없기 때문인가. 더 좋은 학생들을 선발하지 못해서 교육성과가 부진한가. 결코 그렇지 않다. 지금도 서울의 주요 대학들은 우수한(성적이 뛰어난) 학생들을 독점하고 있다. 입시 제도를 어떻게 바꾼다고 해도 결국 대학들은 서열에 따라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차례로 차지하게 될 것이다.

대입제도와 영어는 우리 교육, 우리 사회가 처해 있는 문제의 본질과 멀어도 한참 멀다. 나는 지금의 영어교육이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고 확신한다. 내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의 경우, 어떤 강의를 막론하고 영어를 막힘없이 구사하는 학생 한두 명이 끼어 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영어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인가. 중고등학교, 심지어 대학을 나오고서도 생활영어가 안 된다고 영어교육이 실패한 것처럼 말하는 것도 꼭 옳지만은 않다.

언어란 필요에 의해서 탄생하고 발전한다. 필요에 의해서 배우는 것이 언어다. 생활영어가 안 되는 것은 생활영어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역으로 영어교육이 필요이상으로, 필요하지 않은 사람에게까지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강도 높게 실시되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왜 평생토록 영어를 쓰지 않고도 아무 불편 없이 살아갈 사람을 포함한 모든 국민이 영어를 잘 해야 하는가. 다른 모든 것이 그렇듯이, 영어도 필요한 사람은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열심히 공부한다. 필요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 것을 잘 하지 않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자기에게 필요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열심히 잘 하는 사람이야 말로 어딘가 이상한 사람이다.

재능은 열정의 다른 이름이라고 했던 '철도원'의 작가 아사다 지로가 생각난다. 자라나는 세대가 스스로 필요하다고 느끼고, 좋아하는 것을 잘 할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만들어줄 것인가, 하는 점을 우리 사회는 무엇보다 먼저 고민해야 한다. 필요하다고 느끼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모든 젊은이들이에게 강요해서 그들의 열정을 꺾는 어리석은 행위를 교육이라고 더 이상 착각해서는 안 된다.

적어도 영어하는 사람이 부족해서 재난에 처할 우려는 조금도 없는 나라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는 백만 명이 넘는 해외 거주자를 가지고 있다. 국민 대부분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기본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오히려 영어에만 집중된 외국어에 대한 관심을 다양한 다른 언어로 확산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추진할 시기다. 버마어, 캄보디아어, 라오스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한국에 몇 명이나 있는가. 그러한 언어를 배울 수 있는 교육기관이 단 한 곳이라도 한국에 있는가.

진정한 세계화와 국민의 언어 능력은 영어에 대한 과잉된 숭배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극장에서는 물론 공중파로 보는 외화에서마저 자막으로 깔린 우리말이 틀릴 때가 너무 많다. 모국어에 대한 강한 신뢰와 존중에 바탕하고, 다양한 외국어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지향하는 성숙한 언어정책이 몹시 절실하다. 그 연장선상에서 우리의 교육정책도 다시금 검토되길 바란다. 서로 다른 것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그 다른 것에 몰두하며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교육환경이 조성될 때, 우리는 재능이 왜 열정의 다른 이름인지 확인하게 될 것이다.

[국제신문2008.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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