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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 용 / 보 / 기
글작성자
 방현석 2006-12-03 19:59:03 | 조회 : 5203
제      목  베트남의 자전거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뒤를 돌아보지 않는 베트남의 자전거


                                                                      방현석(소설가)

벌써 10년도 더 전이다. 베트남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의 강열하면서도 대조적이었던 두 가지 풍경을 잊지 못한다.

  공항 입국심사대. 아무리 보아도 군복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는 제복을 입고 한껏 굳은 표정으로 용의자를 바라보듯 훑어보던 직원들의 눈빛은 정나미가 뚝 떨어지게 만들었다.

그들의 비우호적인 태도가 내 국적과 관련이 있는가 싶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 여권의 발급국가인 ‘대한민국’은 그들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그들의 적이었던 미국이 지급한 무기를 들려 젊은이들을 베트남에 보냈다. 내가 그들에게 총을 겨눈 것은 아니지만 나와 무관한 일이라고 주장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 때문이라면 감수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그들의 비우호적이고 불친절한 태도는 다른 국적의 사람들에게도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자신들의 ‘인민’인 베트남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노이바이 공항에서 하노이 시내로 들어가는 내 마음은 가로등 하나 없는 밤길보다 더 어두웠다.  

  내가 전혀 다른 베트남의 풍경을 목격한 것은 다음날 아침이었다.
  소란스러운 소음에 잠이 깨서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던 나는 깜짝 놀랐다. 4차선 도로를 가득 메운 자전거. 아오자이를 펄럭이며 흰 물결이 되어 흘러가는 여학생의 무리는 그중에서도 단연 압권이었다. 자전거와, 그 사이에 드문드문 섞인 오토바이들이 울려대는 경적소리마저 소음이 아닌 활기로 여기게 만들만큼 유유히 흐르는 거리의 물결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하노이에서 훼, 다낭, 나짱, 호치민, 그리고 붕따우까지 베트남을 종단하면서 어디에서나 자전거를 만날 수 있었다. 시골길 위에서 만나는 자전거들은 더 정겨웠다. 그들이 굴려가는 바퀴 어디에서도 이제, 힘겨운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려야 했던 베트남인들의 고통과 불굴의 투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자전거에 실려 온 베트남의 역사는 하노이의 군대박물관이나 호시민시의 전쟁범죄박물관에 전시물로 남겨지게 되었다. 자전거는 프랑스와 미국을 상대로 한 30년 전쟁기간 동안  베트남의 가장 강력한 보급수단의 하나였다. 지금처럼 튼튼하지도 않은 자전거로 300kg이 넘는 보급품을 싣고 쯩선산맥을 내달리며 호치민루트를 만든 사람들이 베트남인들이었다.

프랑스를 궤멸시킨 디엔비엔푸 전투를 준비하기 위해 대포를 해체해서 산꼭대기로 운반할 때도 자전거가 동원되었다.

  역사는 지나가고 자전거가 만들어내는 풍경도 바뀌었다. 자전거를 타고 서로 눈빛을 나누며 나란히 달리는 젊은 연인들은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거리의 풍경은 베트남을 종주하는 보름동안 나를 언제나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베트남이 자전거의 나라이게 한 자연적인 조건이 무엇인지는 베트남에 잠시라도 머물러본 사람이라면 금방 알게 된다. 북부와 중부의 일부 산악지대를 제외하면 어디에서나 드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북부와 중부의 산악지대 마저도 도시는 대부분 분지위에 형성되어 있다. 여성들도 어려움 없이 자전거로 도시 어디로나 이동이 가능한 지형이다. 그리고 겨울이 없는 기후를 빼놓을 수 없다. 하노이 북부에는 사계가 있고, 겨울이면 동사자가 발생한다고 하지만 지극히 상대적인 추위일 뿐이다.

  지금의 베트남 거리는 10여 년 전과는 또 많이 달라졌다. 호치민시와 하노이에서는 자전거를 밀어내며 오토바이가 거리를 점령해가고 있다. 오토바이 뒤로는 자동차가 추격해오고 있다. 신호등 없이도 막힘없이 흘러가던 교차로에서는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뒤엉키고, 자전거는 그 사이에서 전전긍긍한다.

  자전거들의 모습도 바뀌고 있다. 예전, 베트남의 자전거의 공통점은 뒤를 볼 수 있는 사이드미러가 없는 것이었다. 어떤 자전거에도 사이러 미러가 없었다. 그것은 오토바이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산이 대부분인 수입 오토바이에는 모두 사이드미러가 붙어 있었지만 떼어내고 달지 않았다. 떼어내지 않은 경우는 사이드미러를 핸들 가운데로 돌려놓고 거울로 사용했다. 자기가 갈 앞길만 보고 달려가는 것이 베트남의 자전거와 오토바이였다. 그들은 뒤돌아보는 법이 없었다. 뒤에서 달려오는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빵빵거려도 앞을 보며 천천히 자기 길을 갈 뿐이었다.

  뒤 돌아보지 않는 것. 이것이 신호체계와 중앙선 개념이 흐릿한 베트남의 도로위에서 지켜야 할 철칙이라는 것을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 뒤를 의식하고 방향을 바꾸면 사고가 난다는 것이 베트남친구들의 설명이었다.

자기가 갈 길을 흔들림 없이 가 줄 때 뒤따르던 자전거와 오토바이, 자동차가 사고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뒤따르는 사람들은 앞 사람의 속도와 방향을 신뢰하고 속도를 조절하고, 추월방향을 잡는다. 그것은 어디서나 길을 건너는 보행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원칙이었다. 길을 건너다가 주춤거리거나 물러서면 사고가 난다. 자전거와 오토바이, 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횡단하는 보행자의 속도와 방향을 신뢰하고 속도를 조절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가는 방향과 속도에 대한 신뢰. 이것이 무질서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무질서하지 않은 베트남인들의 교통질서를 지배하는 암묵적이지만 확고한 원칙이다. 하나의 문화는 그들의 삶을 규정하는 총체적인 정신의 구성원리와 연결되어 있다. 구성원들의 삶 속에 내면화된 정신은 구성원들이 지닌 용모와 성격을 빚어낸 자연과 무관하지 않기도 하다.

  사람이 가는 방향과 속도에 대한 신뢰. 이것이 베트남을 베트남일 수 있게 한 근원적인 힘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나는 베트남의 거리에서 자주 하곤 했다. 그 신뢰를 깬 사람이 다치는 것을 길 위에서 목격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역사 속에서, 신뢰를 깬 사람이 결국 다친다는 것을 목격해왔을 것이다.

  압도적인 힘을 가진 상대들을 격파하고 독자적인 자신들의 역사를 쓸 수 있었던 베트남의 비밀이 어쩌면 자신의 방향을 향해 자신의 속도로 달려가는 자전거의 풍경 속에 감추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과거를 닫고 미래로 가자!”
  이 슬로건은 베트남의 지도자들이 베트남 자전거문화의 특징을 매우 효과적으로 언술화해서 당면 과제를 해결해온 정치적 능력의 보유자들이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베트남의 당과 정부가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일관되게 내세워온 슬로건이 바로 이 슬로건이었다.

  “과거를 닫고 미래로 가자!”
  사이드미러를 보지 않고 앞만 보고 가는 베트남의 자전거와 오토바이문화는 이 슬로건과 얼마나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가.

  베트남은 이 슬로건 아래에서 30년 전쟁 기간 동안에 쌓인 내부의 원한들이 증오와 보복으로 증폭되는 것을 막아냈다. 그토록 길고 잔인한 전쟁을 치룬 베트남에서 전후보복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작았던 이유도, 빠르게 사회통합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 슬로건을 뒷받침하는 베트남인들의 ‘신뢰의 힘’에서 찾아야 한다.    

  이 슬로건 아래에서 베트남은 자신들의 국토를 30여 년 동안 전쟁터로 만들었던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했다. 한국을 비롯해서 미국의 편에 섰던 과거의 적들에 대해서도 이 슬로건이 지닌 설득력으로 관계를 정상화했다.

  ‘도이머이’란 이름으로, 피로 획득한 체제를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할 때도 베트남은 이 슬로건의 힘을 빌렸다.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이라는 장편소설로 한국에 알려진 시인 반레는 언젠가 나에게 말했다. 베트남은 강한 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의 강한 힘을 믿는다고. 신뢰의 강한 힘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베트남에서 결코 길을 건너지 못한다. 신뢰의 강한 힘을 믿지 못하면서 길을 건너려는 사람은 사고를 당한다.

  강한 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의 강한 힘을 믿는 오래된 베트남의 정신을 베트남의 독립과 승리의 원동력으로 전환시킨 사람은 호치민이었다. 그는 자신의 삶 전체를 통해  신뢰가 무엇이며, 신뢰가 만들어내는 힘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보여준 지도자였다. 그는 자신의 사익을 위해 명분과 논리를 동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전쟁의 참화를 피해보려고 두 달 동안이나 프랑스와 협상에 매달렸던 호치민이 빈손으로 귀국했을 때 전쟁불사를 외치던 강경파들은 일제히 호치민을 매국노로 매도했다. 동요하는 군중들 앞에서 호치민은 조국과 인민을 배신하기 보다는 죽음을 선택하겠다고 말했고, 정적들의 공세는 더 이상 먹혀들지 않았다. 그것은 호치민의 단호한 언술 때문이 아니라 그의 삶이 지닌 담보 가치가 그의 말을 보증하고도 남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호 아저씨가 우리에게 해로운 일을 할 리가 없어.”
  베트남인들이 지닌 이 신뢰의 힘 앞에서 어떠한 정치적 공세도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호치민은 가장 힘든 전쟁 시기에도 전세를 왜곡하거나 과장하지 않았다. 전쟁의 한 복판에서 젊은 인재들을 외국으로 유학 보내며 이렇게 말한 사람이었다.

  “전쟁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오래 지속될 수 있다. 그리고 너희들의 많은 부모와 형제들이 죽어갈 것이다.”
  그는 신뢰가 가장 큰 힘임을 한 번도 잊지 않았다. 그는 온 삶을 통해서 베트남에 신뢰의 신화를 구축했다. 그는 아무런 재산도, 가족도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오직 신뢰만을 남긴 채 떠난 그를 베트남 사람들은 오늘도 박 호, 아저씨라고 부르며 기억하고 흠모한다.

  자전거와 관련된 호치민의 일화 하나가 생각난다.
  호치민을 주석으로 한 베트남정부는 옛 총독부를 접수해서 사용했다. 지금도 사용하고 있고 일부는 관광객들에게 개방되고 있는데, 그 규모가 만만치 않다. 그곳에서 호치민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내부 이동용으로 자전거를 이용했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사람들이 호치민을 만나면 자전거에서 내려 인사를 했다. 아무리 그러지 말라고 해도 듣지를 않자 호치민은 이렇게 말했다.  
  “짜우(조카)들아. 너희들은 내가 사당으로 보이니? 난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이야. 그러니 앞으로는 절대로 내리지 말고 그냥 자기가 가던 길을 가야 한다.”

  선조들을 모시는 사당 앞을 지날 때는 자전거에서 내려 인사를 하고 가는 베트남의 풍속을 들어서 호치민은 사람들이 다시는 자전거를 타고 자기 앞을 지나다가 내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너희들은 내 눈치를 보기위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고 일을 하기 위해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다.”  

[아침이슬출판사 단행본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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