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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국 2007-07-31 19:39:36 | 조회 : 5206
제      목  울산-하노이-방비엥
울산-하노이-방비엥

지난주 베트남과 라오스를 다녀왔다. 두 나라의 풍경은 아주 대조적이었다. 베트남은 온 나라가 개발의 활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노이와 사이공의 거리마다 낡은 건물을 허물고 고층빌딩을 짓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신도시 건설사업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2년째 거침없는 약진을 거듭해온 베트남 증시의 기세는 수그러들 기미가 없었다. 새벽 5시.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오토바이들로 시작되는 베트남의 하루는 심야까지 그 활력을 계속했다. 야간작업을 하는 건설현장은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베트남의 풍경이었다.

한국사회에서 더 이상 느끼기 어려운 변화와 활력에 휩싸인 베트남이 내게는 조금 불편했다. 십수 년 동안 드나들며 느꼈던 편안함을 더는 맛볼 수 없으리라는 예감이 엄습했다. 나라 전체가 공사장으로 변한 베트남은 빠르게 변화하며 경제적인 성장을 이룩해갈 것이다. 대신 여유롭던 베트남 특유의 문화는 사라져갈 것이다. 자전거 중심의 교통이 차량으로 교체되면서 지난 한해에 1만 2000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고 있다.

라오스는 여전히 느린 시간을 살고 있었다. 수도 비엔찬에서 빼어난 풍광으로 이름난 방비엥으로 가는 왕복 2차선 도로 양쪽으로 펼쳐진 산과 들, 마을과 시장들은 삶의 원형적인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방비엥의 황홀한 풍경에 취해 다음날 오전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나는 비를 핑계로 오전 내내 우기의 비안개에 잠긴 들과 마을, 산이 건너다보이는 숙소에서 빈둥거렸다.

우리가 완전히 지워버렸고, 베트남이 지워가고 있는 풍경이 고스란히 방비엥에 남아 있었다. 빗속에서 논갈이를 하고 있는 풍경 안에 나의 유년도 담겨 있었다. 나는 방비엥에서 나와 우리 사회가 지나온 날들을 추억했다.

내 고향은 울산 인근의 시골이었다. 유년 시절 나와 내 친구들은 여름이면 소에게 풀을 먹이기 위해, 겨울이면 땔감을 마련하기 위해 십리 산길을 올라갔었다. 그러나 벼와 보리 이삭줍기를 했던 논과 밭에는 지금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하러 다녔던 산은 골프장과 리조트로 변했다. 나와 함께 나무를 하러 다녔던 고향친구들은 지금 승용차를 타고 그곳에 가서 골프를 친다. 이렇게 우리가 변하는 데 불과 30여 년이걸렸다. 30년 전, 우리들 중에 누가 지금처럼 우리가 살고 있으리라고 상상했겠는가. 세상은 언제나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빠르게 변해왔다.

귀국 길에 한국으로 일하러 오는 베트남 노동자들을 만났다. 노동자송출회사의 표식이 찍힌 푸른 조끼를 입고 공항대기실에 앉아있는 그들의 눈에는 기대와 불안, 긴장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들이 다시 돌아갈 때 한국은 어떤 나라로, 한국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로 남겨지게 될까. 아시아의 여행길에서 만나는, 주머니에 든 약간의 달러를 믿고 우쭐대는 대한민국여권 소지자들이 한국인의 일반적인 모습으로 여겨지지 않았으면 싶었다.

베트남이 지난 10년 사이 엄청나게 변화했듯이 라오스도 머지않아 변화할 것이다. 방비엥의 풍경도 10년 뒤에는 지금의 여유로움으로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은둔하는 적멸의 신비로 세계를 사로잡았던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가 시장판으로 바뀌는데 1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모든 개발이 선은 아니지만, 개발되지 않는 것이 절대 선이라고도 나는 말할 수 없다. 과거의 베트남이, 지금의 라오스 그대로가 좋다고도 나는 말할 수 없다. 내 아이들이 지게를 지고 땔감을 장만하러 10리 길을 걸어 다니는 삶을 나는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조금 더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는 우리가 베트남이나 라오스 사람들보다 행복하거나 우월한 것은 아니다. 인간은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공평한 시간을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일부일 뿐이다. 설사 물질적 풍요가 삶의 우열을 가르는 기준이라 믿는다 하더라도 멀지 않은 미래에 그들도 우리가 변화한 것만큼이나 빠르게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아시아 출신의 노동자들을 조금 더 따뜻한 눈길로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 비록 약간 나은 벌이를 위해 낯선 나라의 낯선 일터에서 일하고 있지만 그들에게도 우리보다 더 아름다운 고향과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

[국제신문2007.07.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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