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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국 2007-08-14 15:27:02 | 조회 : 4615
제      목  신이라도 생명 빼앗아갈 권리 없어
"신이라도 생명 빼앗아갈 권리 없어…관용 보여달라"
탈레반에게 보내는 편지
  

탈레반의 전사 여러분!
지금 우리 한국인들의 눈길은 온통 당신들에게 쏠려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들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당신들이 왜, 무엇을 위해 총을 들었는지 뒤늦게 알아가고 있습니다.

조국을 점령한 소련을 물리치고 독립을 쟁취하는 항전의 과정에서 보여준 당신들의 용기에 나는 경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슬람공화국을 수립하고 약탈과 강도, 부정부패를 척결한 당신들의 순결한 정신과 뛰어난 정치적 능력에 대해서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이슬람 경전이 언명한 바를 엄격하게 현실에 적용하려고 한 ‘원리주의’의 선택이 나날이 확장되어 가는 물신주의 사회에 대한 당신들의 걱정과 고민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도 모르지 않습니다.

전쟁을 경험하고 아직도 분단을 극복하지 못한 나라의 작가로, 서구중심의 세계질서 속에서 상처 입은 아시아의 작가로 살아가는 나는 지금 당신들의 나라가 처한 어려움에 대해 깊은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정과 부패, 세속적 타락을 극복하고 신의 뜻을 현실에서 구현하려고 했던 당신들의 꿈이 어떻게 좌절되어 왔는지에 대해서도 모르지 않습니다. 서구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것들을 야만으로 단죄하는 서구중심주의에 대해서는 저도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깊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공동체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당신들의 주장을 나는 전폭적으로 지지합니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고 있는 외국군대에 대한 당신들의 분노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은 오랜 역사를 지닌 남의 공동체를 침략하고 간섭하며, 남의 문제를 내가 해결할 수 있다는 강대국들의 오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모든 비극은 무지와 오해에서 비롯됩니다. 소련과 미국으로 대표되는 세계의 강대국들이 조금만 더 당신들의 오랜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고 존중했더라도 당신들이 지금과 같은 극단적인 방법의 투쟁을 선택하지 않았을 테지요.

탈레반의 전사 여러분!

이제 나는 여러분이 증오해온 상대들과 같은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다른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용을 부탁드리려고 합니다. 더구나 선의를 가진 또 다른 당신들인 인간에 대해 당신들이 ‘신의 사랑’을 보여주실 것을 호소합니다.

당신들이 데리고 있는 임현주라는 한 여성에 대해서만 말해 보겠습니다. 그녀는 한국의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여상을 졸업하고, 스스로 학비를 벌어서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간호사가 되었습니다. 한국의 이름 있는 병원에서 근무하던 그녀는 자신이 그동안 모은 돈을 모두 가족에게 주고 3년 전 아프가니스탄으로 갔습니다. 아파도 치료받지 못하는 아프가니스탄의 참상을 보고 당신들의 동포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의료봉사단체의 일원으로 그곳으로 갔고 밤낮으로 일했습니다.

지난 6월, 그녀는 3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에 다니러 오면서 팔을 잃어버린 아프가니스탄 소년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곳에서는 치료가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한 달 만에 아프가니스탄으로 가는 봉사단의 안내를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고 다시 그곳으로 갔습니다.

나는 그 어떤 사람도, 심지어 신이라 할지라도 오로지 선의에 따라 살아온 그녀의 생명을 파괴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부디 당신들이 임현주라는 여성이 있는지 확인하고 그녀가 어떻게 살아왔으며, 당신들의 나라와 당신들의 동포들을 어떻게 사랑했는지 물어보아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당신들이 데리고 있는 사람들은 다 그런, 당신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다만 ‘사람’들일 뿐입니다.

부디 당신들이 이 선의의 사람들을 무사하게, 오늘도 울고 있는 가족들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용기 있는 결단을 내림으로써 당신들의 대의를 온 세상에 아름답게 확인시켜 주시기를 호소합니다.

많은 아시아의 작가들과 더불어 당신들, 탈레반을 좀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을 드리면서, 2007. 7. 24.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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