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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국 2007-12-07 09:41:31 | 조회 : 4600
제      목  아주 특별한인터뷰
아주 특별한인터뷰

가까이 있는 것들은 대충 지나치기 쉽다. 사람의 관계도 예외가 아니다. 가까운 사람들에 대해서 의외로 모르는 경우가 많다. 같이 살기 때문에 다 안다고 여기는 가족에 대해서 우리가 정말로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몇 주 전이다. 이틀 동안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중환을 앓고, 이제 인생의 마지막 지점을 통과하고 있는 당신은 아주 담담하게 81년 생애의 중요한 고비들을 회고했다. 식민지시대에 빈촌에서 태어나 학병과 징용을 피하기 위해 만주를 오간 아득한 이야기부터 시작된 당신의 삶은 내가 짐작하고 있던 것과 다른 부분이 아주 많았다.

부모들이 가끔 늘어 놓는 인생 이야기를 자식들은 잔소리를 위한 전주곡으로 치부하기 마련이다. 그저 아주 여러 번 반복된 이야기만 몇 개 짜깁기해서 자식들은 부모의 생애를 '임의적으로 편찬'해버린다. 본인의 감수도 받지 않고서.

따로 시간을 내 병석에 누워 있는 아버지 앞에 노트북을 펼쳐 놓고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나도 사실과 다른 아버지의 생애를 영원히 사실로 믿게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를 상대로 이틀 간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나는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40대 중반이 되도록 나는 아버지와 이렇게 길게 이야기해 본 적이 없었다. 정리된 분량도 몇 페이지 되지 않고, 그 내용도 남들에게 그리 대수로울 것이 없을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긴 세월 당신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길을 걸었던 나에 대한 섭섭함이 당신에게 왜 없었겠는가. 고집스런 당신의 태도에 대해 나라고 왜 못마땅한 것이 없었겠는가. 나와 인터뷰를 한 지 보름 만에 당신은 의식을 잃었다. 당신과 그렇게 이야기할 시간을 만들지 않았다면 난 지금보다 훨씬 아쉽고 힘들었을 것이다.

내가 병상에 누운 아버지를 상대로 인터뷰를 한 것은 내 아이들, 당신의 손자들을 위해서였다.

명절과 기일마다 우리는 조상들을 모시고 차례를 모신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절을 올리는 선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 채 제주를 따라 습관적으로 전신운동을 한다. 조상이 많은 경우에는 참으로 따분하고 힘겨운 노동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내 아들이 자식들과 함께 '만약'에 제사를 지낸다면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즐겁게 이야기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농부의 아들이었고 목수였으며, 한 때는 작은 공장을 운영한 사업가였다고. 목수 시절에는 남들이 두 달 걸려서 지을 집을 늘 한 달 만에 지은 사람이었다고. 남의 일을 자기 일보다 더 열심히 해서 누가 건축주고 누가 목수인지 알 수 없었다고. 병으로 쓰러진 여든까지 매일 소주 반 되를 마시는 애주가였으며, 거동이 불가능해지는 순간까지 쉬지 않고 일했다고. 차례상 앞에서 아이들이 유쾌하게 떠들며 할아버지를 기억하기를 나는 기대한다.

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에는 생애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는 환자들이 더러 있다. 이 생애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찾아 와서 슬퍼하며 위로한다. 어서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애틋한 풍경이기는 하지만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가고 있는 이들에게 이런 위로가 힘이 될 수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떠나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그러나 떠나는 것이 모든 것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가 지탱했던 삶을 스스로 차분히 되돌아보며 정리하고, 담담하게 떠날 수 있게 도와주는 방법의 하나가 그에게 이야기를 청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떠나가는 사람 스스로 할 수 있으면 더 좋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쑥스럽고,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일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들어주는 사람 없는 이야기는 얼마나 맥 빠지는가. 아직은 이야기를 거는 것도 쑥스럽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 하나의 이야기로 남아,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의 DNA로 후대에게 유전되기를 바란다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의 삶은 관직의 품계를 열거하며 입신출세를 권장하는 족보로 남겨지는 것보다 하나의 이야기로 남겨질 때 좀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

[국제신문2007.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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