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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2008-06-20 10:19:18 | 조회 : 3819
제      목  쌓은 ‘명박산성’ 70년대 상상력 목격했다
쌓은 ‘명박산성’ 70년대 상상력 목격했다

광화문에 거대한 철벽이 들어섰다. 컨테이너와 컨테이너 사이에 H형 쇠기둥을 세우고 용접을 해서 쌓아올린 전대미문의 2층 철벽이었다. 모든 행위에는 그 행위자들의 상상력이 반영되어 있는 법이다.

10일 밤 서울광장의 촛불시위에 참가한 소설가 방현석씨가 생각에 잠겨 있다. <김정근기자>
광화문 한복판에 세워진 철벽보다 더 어이없고 놀라운 것은 그 철벽 너머에 버티고 있는 철벽보다 경직된 상상력이었다. 6월10일 광화문에 있었던 사람은 누구나 정확히 1970년대에 머물러 있는 현 정부의 상상력을 목격했다.

그 철벽 앞으로 촛불의 배후 ‘아고라’가 행진하고 있었다. 이 풍경도 철벽만큼이나 놀라웠다. 무시무시한 배후가 해맑은 맨 얼굴로 최전선에 서 있었다. 인터넷 공간의 좀비로 취급받았던 개별자들이 ‘토론의 성지 아고라’ 깃발 아래 모여 철벽을 향해 전진하고 있었다.

과연 아고라는 철벽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인가. 철벽은 아고라를 저지할 수 있을 것인가. 아고라는 철벽을 돌파하지 않았다. 돌파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이 결과는 이미 예정된 일이었다.

이미 아고라에 올라와 조회수 10만을 훌쩍 넘긴 ‘물리력보다는 상상력이 필요한 시기입니다’라는 의견은 1000개가 넘는 댓글의 지지를 얻은 다음이었다. 이 지휘서신은 미성숙한 상대에게 “성숙한 시민의 모습으로 대항”하라며 “기성세대의 손쉬운 물리력으로 틀을 좁히지 말고 중·고등학생과 유모차가 어울릴 수 있게 공간을 넓혀나가라”고 촉구했다.

5000개가 넘는 추천을 받은 이 글의 의견대로 아고라는 21세기의 광화문 한복판으로 불려나와 곤욕을 치르고 있는 20세기의 애교스러운 상상력을 조롱하며 유쾌하게 즐겼다. “이순신 장군이 뒤에 서 있다고 여기가 부두인줄 아세요” “삽질은 강가에 가서 하세요”. 철벽은 어느 사이 너무나 낡은 상상력을 조롱하는 ‘아고라’의 거대한 오프라인 화면으로 바뀌었다.

철벽과 아고라.

이것보다 더 촛불문화제의 대치지점이 어디인지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다. 컨테이너 철벽과 시민들을 향해 설치된 대형 스피커는 소통불능과 일방통행의 상징이었다. 온라인 광장 아고라에서 토론을 통해 방향을 정하고 오프라인 광장 광화문에서 쉼없이 서로 문자를 날리며 이동경로를 바꿔가는 이들의 의사결정, 행동양식을 낡은 일방통행의 상상력으로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왼손에 촛불을 들고 이동하면서 엄지로 문자를 날리는 여고생, 무선모뎀이 장착된 소형 노트북으로 현장상황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송고하는 청년, 이들은 공간의 제약을 느끼지 않고 소통하는 신인류들이다. 이들에게 철벽은 하나의 코미디일 뿐이다. 철벽으로 실시간으로 주고받는 문자들을 막겠는가. 무선모뎀을 타고 날아가는 글과 영상들을 막겠는가.

마이크를 들고 현장 속을 누비는 1인 방송국 기자들을 보며 옆에 선 시인과 몽골에서 보았던 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덩치가 크고 사나운 개가 우리를 향해 물듯이 덤벼들고 있을 때 주인여자가 가지고 나온 것은 쇠사슬도 몽둥이도 아니었다. 천으로 된 가늘고 짧은 끈 하나였다. 고개를 갸웃하며 개의 입을 묶으려는가보다 했던 우리의 짐작과 달리 주인 여자는 개의 앞다리 하나를 접어서 동여맸다. 속도를 빼앗긴 개는 사납던 기세를 금방 잃어버렸다. 개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사슬로 묶어 두거나 우리 안에 가두는 것만이 방법이라고 생각해온 우리에게 속도를 빼앗아 버림으로써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유목민의 상상력은 놀라운 것이었다.

철벽의 상상력은 아고라의 상상력을 결코 이길 수 없다. 철벽의 세대는 속도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아고라는 컨테이너 철벽을 무너뜨리거나 타고 넘어갈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 철벽으로 가로막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컨테이너 성벽을 넘어 그들은 청와대로 달려가 홈페이지를 점령하고 농성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아무것도 막아낼 수 없는 컨테이너 성벽에 그들은 축사 하나를 현수막으로 걸어주었다. ‘경축 서울의 새로운 명물 이MB산성’. 이 명물이 하루 만에 사라진 것을 안타까워해야 할 것인가, 다행스럽게 여겨야 할 것인가.

[경향신문2008.06.11-작가회의 ‘촛불 집회’ 릴레이기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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