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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2007-12-07 09:45:36 | 조회 : 4519
제      목  영혼의 도서관
영혼의 도서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선산에 모셨다. 먼저 가신 작은아버지의 옆자리였다. 두 해 전 문중에서 바로 그 선산의 터 좋은 곳에 집단 납골 시설을 만들었지만 그곳에 모시지 않았다. 아버지가 바라던 바가 아니기도 했고, 나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매장주의자'다.

매장 형식의 장묘 문화를 지지한다고 말하면 시대착오적인 사람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실망스럽다는 눈빛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매장 문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과 환경 보호를 그 이유로 든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묘지로 인해서 산림이 크게 훼손되지도 않고 국토 이용의 효율성이 떨어지지도 않는다.

수십만 평의 산을 헐어 만드는 골프장 문제까지 굳이 끌어들일 생각은 없다. '임산 도로'라는 이름의 길도 일부러 낸다. 물론 지나치게 넓은 면적에 인공적인 석물을 들여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묘지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묘지는 자연의 일부로 편입된다.

내가 납골 시설을 바로 곁에 두고도 매장을 선택한 건 아버지의 삶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은 전혀 자연스러운 형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평생을 목수로, 농부로 살아왔다. 아버지는 자신이 태어난 그 산자락에 깃들어 살다가 그 산자락 아래에서 삶을 마감했다. 그런 아버지가 자신의 육신을 의탁할 곳은 마땅히 그 산자락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성묘를 하러 다니는 길목에도 돌보지 않는 묘지들이 많이 있다. 더러 봉분은 희미하게 지워지고 나무들이 자란다. 조상을 기억할 후손을 두지 못한 묘지는 누가 어떻게 하지 않아도 빠르게 자연의 일부로 복귀한다. 조상을 기억하는 후손들을 둔 묘지는 가끔 그 후손들을 자신의 품으로 불러들여 자연의 조화로운 질서에 대해 생각하도록 하고, 쉬었다 가게 만든다.

그러나 누구나 자연의 품으로 돌아갈 권리를 가진 것은 아니다. 현대 도시인들의 삶은 자연적이지 않다. 인위적인 안락을 좇아, 있는 창문도 모두 밀폐하고 사계절을 강제 냉난방 시스템에 의존해 살다가 생을 마감하면서 자신의 육신을 자연의 일부로 편입시키겠다는 생각은 좀 뻔뻔스러운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도시적 삶의 형식에 적합한 장묘 문화가 있는 것도 아니다.

묘지를 대체해서 들어서는 우리나라의 납골묘들은 도시적인 삶의 형식에 대응한 장묘 형식이 부재해서 발생한 이상한 절충의 결과다. 아버지의 세대처럼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삶을 살지 않는 지금 그리고 이 후 세대에게는 분명 다른 대안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파주출판도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영혼의 도서관'은 매우 신선하다. 한 사람의 생을 한 권의 책으로 보존한다는 구상이다. 매장이나 납골과 같이 인간의 육신을 모시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과 영혼의 흔적을 한 권의 책과 한 편의 영상으로 갈무리하겠다는 것이 세계적인 책의 도시 파주출판도시의 계획이다.

만약 이 계획이 실현된다면 '묘지'나 '납골당'이 아닌 도서관에서 선조들의 삶을 더듬어 기억하고, 그 지혜와 교훈을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영혼의 도서관'으로 명명된 그곳에 자신의 영혼을 묻고자 하는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 미리 예약을 하고 그 도서관이 마련한 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한다. 가령 해마다 2박3일간 책과 문화의 도시인 출판도시에 입소해서 정해진 봉사활동을 하고, 스스로 선택한 책을 읽고, 자신의 삶을 자서전의 형태로 기록해야 한다. 유서를 미리 쓰고, 다음해에도 살아 있다면 다시 입소해서 유서를 고쳐 써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거창한 업적을 남기거나, 글을 잘 쓰는 사람들만 이 도서관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소박하고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의 삶이라면 그것이 단 몇 쪽짜리 책이라 할지라도 후손들에게는 소중한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고단한 생애를 살며 글 쓰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구술을 통해 자신의 책을 남길 수도 있을 것이다.

꼭 기일과 명절이 아니더라도 자손들은 '영혼의 도서관'을 찾아 아버지와 할아버지, 어머니와 할머니의 인생을 읽고 육성을 듣고, 영상을 보며 자신의 삶을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영혼의 도서관은 단지 후손들만을 위한 곳이 아니다. 생을 종요롭게 마감하는 일을 돕는 곳이기도 하다. 영혼의 도서관은 왜 인간이 묘지를 만들고, 그 생을 기억하고자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에 더욱 근접한 장묘 문화가 될 것이다.

[국제신문2007.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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