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문화네트워크

 |  |  |  | 

  칼럼
  · 김지숙
  · 김남일
  · 방현석
  · 오수연
  · 최수전

내 / 용 / 보 / 기
글작성자
 사무국 2006-06-22 12:36:56 | 조회 : 6951
제      목  의미심장한 실패

의미심장한 실패


지금 나는 한 장의 사진을 보고 있다. 삽시간에 전 세계에 퍼진 유명한 사진이다. 사진 속에는 두 가지 피사체가 있는데, 하나는 액자에 담긴 사진이며 하나는 그 옆에 늘어져 있는 희고 붉은 줄무늬 천이다. 반쯤만 보이지만 그 천은 미국 국기 성조기임에 틀림없다. 액자에는 한 남자의 얼굴 사진이 들어있다. 그는 눈을 감고 있다. 죽었다. 시체와 성조기.

소름이 끼친다. 코밑과 머리에 피가 번져있는 주검을 전 세계의 어린이와 노약자,임산부들에게 조심하라는 경고마저 없이 보여줘도 괜찮을까? 영광스러운 성조기로 장식하면 주검의 섬뜩한 느낌이 상쇄되는가? 주검조차 뿌듯한 자랑거리가 되는 걸까?

나는 오래 전 보았으되 결코 잊지 못했던 또 한 장의 사진을 떠올린다. 2차대전 때의 사진이었을 게다. 남녀노소가 둥그렇게 둘러서서 웃는데,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대상은 나무에 목 매달린 시체였다. 결혼식에 나온 신랑을 축하라도 해주고 있는 듯한 구경꾼들의 웃음이 시체보다 더 무서웠다. 사진을 보는 내게는 웃고 있는 그들이 매우 비정상적이고 기괴하게 보였지만, 사진 속 당사자들에게는 적 또는 배신자의 시체 앞에서 느끼는 기쁨이 당연하고도 일반적인 정서였을 것이다. 그것이 전쟁이다. 비정상적인 일들을 당연히 여기게 만든다.

시체와 성조기의 조합은 우연이 아니었다. 부시 대통령은 테러리스트 알 자르카위의 죽음이 미국의 '의미심장한 승리'라고 선언했다. 국내적으로도 높아만 가는 반전 여론에 부딪힌 그로서는 이라크 전쟁의 성과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 자르카위의 시체였다. 시체 사진을 성조기가 장식한 게 아니다. 성조기를 시체 사진이 장식했다. 이라크 민중의 해방 운운하며 이라크로 달려간 미군이 얻은 것은 시체이며, 물론 기름과 함께, 앞으로도 이라크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더 많은 시체가 필요할 것이다.

다시 또 나는 시체보다는 그 옆의 성조기가 더 무섭다. 죽음은 안 보고 제거만 자축하는 사진의 정서는, 9·11 테러 사건 때 제국주의만 보았지 희생될 개인들을 보지 않았던 테러리스트들의 정서와 닮았다. 이라크에서 민간인 학살 사건이 연달아 터지는 것 또한 우연이 아니다. 이라크 총리가 말했다.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이 이라크인들을 존중하지 않"으며 "이제는 이들이 자행하고 있는 민간인 상대 폭력행위가 일상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고. 이라크 전역에서 일상적으로 폭력을 저지르는 미군은 일부 규율에 어긋난 병사들이 아니다. 세계 최강의 오만함이 뼛속 깊이 밴 미군 전체이다. 그들은 짓밟아버려야 할 귀찮은 테러만 보지, 먹고살려고 움직이고 공부하고 병원에도 가야 하는 민간인들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많은 시체를 얻어낸다 해도, 테러에 대한 대책하고는 상관없을 것이다. 테러는 분노와 절망에서 나온다. 폭력으로 억누르면 억눌리는 자의 분노와 절망을 증가시켜 더 많은 테러를 낳는다. 목 하나를 자르면 열 개의 새로운 목이 나오는 히드라와 같다. 잔혹한 테러리스트 자르카위를 비장한 영웅으로 만듦으로써 미국은 테러를 가장 확실하게 밀어주었다. 테러가 제국의 성조기에 대적하는 숭고한 사업이라고, 그 어떤 광고보다 효과적으로 만방에 선전해주었다.

전 세계 신문 방송이 죽은 테러리스트 사진을 떡칠한 그날, 확인된 것은 미국이 일으킨 이라크 전쟁의 의미심장한 실패다. 39개국을 끌어들인 세계적 전쟁 3년 만에 인류에게 던져줄 것이 그 시체란 말인가. 10만 명 이상 인명 손상의 대가가 그것인가. 3년 내리 삶의 질 세계 최하위, 60%가 넘는 실업률에 폭발 직전인 이라크 사람들의 불만을 요르단 출신 테러리스트의 시체로 입막음할 수 있을까.

잔인함과 슬픔에 대한 감각을 상실한 미군은 이미 스스로는 돌이키기 어려운 비정상적인 상태다. 그들은 살상과 파괴를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수행하면서 어쩌면 웃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웃건 울건, 어디서나 자르카위가 벌떡벌떡 살아 일어나 달려들 것이다. 한국군은 어서 빨리 그 좀비의 악몽에서 빠져나오라.

[2006/06/12 034면]

번호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6  팔레스타인이 한국 불쌍히 여기는 까닭 관리자 08.04.28 20249
15  누구나 길을 잃는다 [2870] 사무국 07.06.25 9258
14  중동이 아니다 사무국 07.06.25 6394
 의미심장한 실패 사무국 06.06.22 6951
12  미래에서 돌아온 어른들 [207] 사무국 06.06.22 6776
11  독도와 새만금 [169] 사무국 06.06.22 9447
10  꿈은 스포츠로 이뤄지지 않는다 [42] 사무국 06.04.14 8153
9  신의 것, 인간의 것 사무국 06.03.14 6555
8  반대와 반대 사무국 06.02.28 6578
7  그만 보여 줘 사무국 06.02.02 6578
6  그들은 신발을 벗지 않는다 [414] 사무국 05.11.18 6725
5  밥상 앞에서 [444] 사무국 05.11.08 7556
4  평화의 두 얼굴 사무국 05.11.08 6529
3  소시민의 고민 [72] 사무국 05.11.08 6520
2  정말 우리는 모르나 [113] 사무국 05.11.08 6689
1  오수연 칼럼 [868] 관리자 05.06.05 5949
  1  
Copyright 1999-2017 Zerobo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