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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국 2005-11-08 16:01:20 | 조회 : 6529
제      목  평화의 두 얼굴
평화의 두 얼굴



평화 싫다는 사람 있을까. 평화는 아주 안전한 말이다. 전쟁 없이 평온하다는 말뜻도 안전하고,어느 국면에서나 무난하게 통하는 용법도 안전하다. 민주나 자유 같은 단어들은 원래 뜻이야 좋되 정치적 냄새를 풍기건만,평화만은 민관을 불문하고 남녀노소 누구나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 독서와 문화의 계절 가을,민간단체나 지방 자치 단체,정부 기관이 주최하는 행사들이 많이 열리는데 평화 또는 세계 평화가 단골 주제다. 벽보판 앞에 한번 서 보라. 평화가 가득하다.

11월에 부산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반도 평화 체제'가 출범된다고 한다. 그러나 탈냉전,북방경제,대북 중대 제안 등 가슴 설레는 신문 기사 밑에는 이런 짤막한 기사도 있다. 내년에 이라크에 군대를 보낸 많은 나라들이 철군한단다. 미국,영국,한국을 제외한 25개국 중에 10개국이 철군하여 15개국만 남는데,그 15 나라의 군대를 합쳐봐야 2천378명이다. 우리나라 자이툰 부대 3천376명보다 적다. 우리나라는 부동의 3위 파병국으로서 이라크에서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할까.

우리가 언제부터 이라크에 이다지 관심이 많았고 책임감을 느꼈나. 전쟁을 일으킨 미국,영국 말고는 남들은 이라크에 갔다가도 빠져나오는데,유독 아시아 대륙 건너편의 약소국 대한민국의 군대만 거기 남아있을 이유는 무엇인가. 파병 반대를 불가피한 찬성으로 바꾼 '국익론'의 핵심은 북핵 문제였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우리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무엇을 얻었는지는 안보상의 비밀인 탓인지 밝혀진 바 없다. 국민은 분위기상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는데,이라크 파병이 한반도 평화의 밑거름이 된 듯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이 분위기는 전혀 평화롭지 못하다. 내가 평화롭기 위해서 남은 평화롭지 못해도 된다,이건 평화가 아니다. 이라크에서 지금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건 전쟁이며,우리는 이라크에 파병했을 때 평화를 택하지 않았다. 그리고 철군하지 않고 파병 기간을 연장했을 때 거듭 평화가 아닌 반대편을 택했다.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평화라는 말을 가장 깊게 각인시킨 사람은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다. 지지난해부터 줄기차게 전 세계 텔레비전에 나와 평화를 위해 싸우자고 떠들었다. 자기가 주먹을 휘두르며 할 짓 다 해도 남들은 찍 소리 말고 엎어져 있는 게 그의 평화이다. 억울한 사람이 찍 소리 못하고 있는 것도 겉으로는 조용한 상태로,전쟁 없이 평온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평화는 추악하다. 평화롭기만 하다고 좋은 게 아니다.

교육방송 다큐멘터리 축제에서 방영된 '내 마음 속의 작은 평화'는 학교 가는 길에 바로 앞에 있던 버스가 자살폭탄 테러로 폭발하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은 이스라엘 소년의 이야기이다. 소년은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으로 친구들과 함께 작은 모임을 꾸려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왜 우리가 어른들이 일으킨 전쟁의 피해자가 돼야 하지?" 그 과정은 쉽지 않다. 친구 누구는 영재교육을 받으러 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없고,또 누구는 소년이 유명해지려 한다고 꼬집고,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은 경계심이 너무 많고 등등. 결국 소년은 이스라엘 병사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줄 세워 놓는 검문소 앞에까지 가서 이스라엘의 억압이 테러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런 일을 하는 군대라면 가고 싶지 않아." 소년은 평화를 위해 대가를 치른다.

누구나 평화가 중요하다는 걸 안다. 그러나 평화는 자기 건 조금도 손해 보지 않고,어떤 위험도 감수하지 않으면서 부드럽게 얻어질 수가 없다. 뭔가 대가를 치러야 한다. 우리는 그럴 의향이 있나? 평화는 부시 식으로 말하자면 싸움인데,남이 아닌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평화는 우리의 모든 일상생활에 대한 도전이다. 알고 보면 평화 이야기하다 잡혀간 사람들도 많다.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여 군대 복귀를 거부했던 강철민씨,대체복무를 원했으나 안되자 차라리 감옥을 택한 염창근 씨 등. 이 시대 평화는 도무지 평온하지 않다.


[부산일보 2005/09/26 0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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