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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국 2005-11-18 10:13:53 | 조회 : 6724
제      목  그들은 신발을 벗지 않는다
그들은 신발을 벗지 않는다



요즘은 공항에서 검색대를 통과할 때 신발을 벗는다. 비싼 비행기를 타려는 사람들이 소박한 슬리퍼로 갈아 신어야 한다. 슬리퍼는 한 색깔 한 사이즈밖에 없다. 남녀노소 공히 방금 전 누가 신었는지 모를 슬리퍼에 발을 꿰고 어기적거리며 걷는다. 물론 테러의 위험 때문이다. 검색대 앞에서는 비즈니스 클래스 승객들조차 테러리스트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받아야 한다. 이번 부산 아펙 회의에 아시아·태평양 지역 대통령과 총리,대표단 등 1만여 명이 왔단다. 그들은 공항에서 신발을 벗었을까. 매우 중요한 인물(VIP)들인 그들 상당수가 아마 벗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매우 안전한 인물들이라는 보장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펙 회의를 경비하느라고 5만여 명의 경찰이 동원되었으며 인터폴,시아이에이 등과 협조 체제도 구축되었다고 한다. 단지 각국을 대표하는 정치가와 관료들을 경호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아펙 회의 자체가 테러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있고,개최지인 우리나라 또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라크 파병이 미국의 세계 전략 속에서 살아남아보려는 우리 정부 나름의 전략이었다면,테러의 위험은 그 대가다. 그리고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를 촉진시키기 위한 아펙 회의에 참가자들은 테러의 공포와 함께 왔다.

수만 명의 테러리스트들을 나는 보았다. 그들은 매일 아침 집을 나서 회사나 학교에 가기 위해 진흙땅 위에서 공항 못잖은 검색을 받아야 했다. 게다가 검색을 마쳐도 검색대를 통과하리란 법이 없었다. 다행히 통과하여 학교나 회사에 갈지라도,저녁 때 귀가할 때 또 줄지어 검색을 받아야 했다. 역시 검색을 마쳐도 검색대를 통과하여 집에 닿으리라는 법이 없었다. 그들이 모조리,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잠재적 테러리스트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재수 없어 총알이나 대포알에 맞아 죽으면 그들은 테러리스트로 신문에 이름이 나서,마침내 정체를 드러낸 테러리스트가 되었다. 이스라엘에 점령당한 팔레스타인에서 수십 년 째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지금 이라크의 팔루자 같은 지역도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보통 사람들을 테러리스트로 만드는 이 폭력 또한 테러다. 그리고 이런 강자들의 테러가 도저히 이렇게는 못살겠다고 이를 악문 약자들의 테러를 양산한다. 내 생각에 9·11보다 심각한 이 시대의 테러 사건은 이라크 침공이다.

아펙 정상 회의의 두 번째 주요 의제가 '안전하고 투명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인데,그 주요 내용은 안보요,또 안보의 주요 내용은 테러에 대한 협력이라고 한다. 그러나 약자들의 테러가 자꾸 생기는 원인은 덮어두고 잘 협력하여 말살 대책만 세운다면,이도 역시 강자들의 테러 아닌가. 테러리스트가 혹시 있을지라도 전국의 경찰이 몰려가서 철통같이 지키는 회의장 바깥에만 있겠는가,나는 생각한다.

대규모 테러는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 어마어마한 무기를 퍼붓는 패권국가의 테러,즉 전쟁,그리고 9·11 같은 무장단체의 테러 둘 다 본때를 보여줘야 할 집단만 본다. 개인들이 얼마나 착하고 예쁜지는 보지 않는다. 그래서 정작 책임이 있는 사회 고위층이 아니라 일반인이 피해를 보기 십상이다. 전쟁이 나도 권력자나 부자들은 가장 안전한 곳에 숨고 외국으로 도피할 수도 있으며,평상시에도 외부로부터 격리된 특별한 장소들만 골라 다닌다.

테러의 위험을 감수하면서라도 중대 결정을 내렸던 매우 중요한 인물들은 테러가 터져도 아마 괜찮을 것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대중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하늘이 무너져도 집 말고는 갈 데가 없는,중요하지 못한 다수가 문제지.

삼일 후면 각국의 정상들은 중대한 선언을 발표하고 떠날 것이다. 신발도 벗지 않고 공항을 통과하여 각자 특별기를 타고 제 나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안전하게 회의를 마치고 돌아간 후에,과연 아시아는 안전할까.


[부산일보 2005/11/16 030면]

alexk153
Very nice site! 07.04. 04:21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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