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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국 2006-02-28 13:37:38 | 조회 : 6577
제      목  반대와 반대

반대와 반대


국시 논쟁이란 것이 있었다. 벌써 20년 전 일이다. 한 국회의원이 우리나라 국시의 제일(국가 시책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반공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의 확립이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가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적이 있다. 몇 년 뒤에 그 국회의원은 대법원에서 '면책특권에 의한 무죄'를 선고받았다. 면책특권이란 국회의원이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은 책임을 면제받는 특별한 권리다. 대법원은 특권 없는 보통 사람은 똑같은 발언을 했다가는 국가보안법에 걸린다고 판결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때 제일의 국시는 엄연히 반공이며,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과업은 공산주의 반대였다.

나는 참 억울했다. 당시 '국민'학교였던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선생님께 손바닥을 맞아가며 달달 외운 '국민교육헌장'에는,"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것마저 아니고 우리가 공산주의에 반대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났다니. 공산주의가 사라져 더 이상 반대할 필요가 없어지면,나도 더 이상 살 필요가 없나? 그게 무엇이든 나는 어떤 것에 반대하기 위해 살고 싶지 않았다. 반대하려면 그것에 대해 생각해야만 한다. 제일 큰 목표가 반대라면,나를 제쳐놓고 내가 반대하는 대상을 가장 먼저 또 중요하게 생각해야만 한다. 한번밖에 없는 인생,내 생각하기도 모자란데 남의 생각 반대하다 끝나고 싶지 않았다. 벌써 20년 전이라지만,실은 고작 20년 전이다. 20년 전만 해도 대한민국 국민들은 공산주의 반대를 위해 살기를 강요받았다.

지금 미국인들은 테러에 반대하기 위해 살고 있는 것 같다. 미 대통령 부시가 천명한 국가 시책에 따르면 그렇다. 테러가 없어지면 뭘 하고 살려는지? 내가 걱정해줄 바는 아니겠으나,반대할 걸 또 찾아내지 싶다. 부시 대통령은 테러에 반대한다는 명분으로 가장 큰 테러인 전쟁을 감행했고,사담 후세인의 독재에 반대한다며 독재에 시달린 이라크 국민 위에 새로운 독재자로 군림했으며,이라크에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 반대를 이유로 열화우라늄탄 같은 대량살상무기를 썼다. 뭐라도 또 저지르려면 그 전에 반드시 바로 그것을 반대해야만 하지 않겠나?

이란에 이어 팔레스타인에서도 강경파가 집권했다. 총선에서 '하마스'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선택은 당연히 존중받아야 하며,그들이 하마스를 당선시켰다고 경제 봉쇄 등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패권 국가들의 호통은 뻔뻔스럽다. 그러나 나는 팔레스타인인들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번 총선에서 하마스는 전략적으로 이스라엘과 미국에 대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원통한 감정을 건드렸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딱히 하마스라기보다,이스라엘과 미국에 대한 반대에 찬성했던 것 같다.

물론 억압당하는 자의 반대는 억압자의 반대와는 다르다. 억압자의 반대가 더 억압하기 위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면,피억압자의 반대는 더 이상 이렇게는 못 살겠다는 절실한 반응이요 항거다. 그러나 그것도 반대이며,반대로 몸과 마음이 꽉 차 있는 그 상태가 당사자에게도 기껍지만은 않을 것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기필코 넘어가야만 할 과정일 수는 있으되,삶의 궁극적 도달점은 아닐 것이다.

3년 전에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발급한 여권으로는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입국했던 팔레스타인 시인은,뜻밖에 "장미를 노래하고 싶다"고 말했다. '용감한' 발언을 기대했던 나는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그는 덧붙여 말했다. 이스라엘에 필사적으로 저항하려다 보니,팔레스타인의 거리만이 아니라 문학조차 온통 이스라엘 탱크와 점령군으로 뒤덮였다고. 팔레스타인인들이 반대하는 이스라엘 점령군이 소재로 주제로 또 등장인물로 문학을 차지해버리고,정작 팔레스타인인들 자신에 대한 문학은 고갈되었다고. 이제 나는 그 시인을 이해할 것 같다. 세월이 갈수록 팔레스타인인들은 온통 이스라엘에 대한 반대만 하지 않을 수 없게끔 더욱 내몰리고 있다. 나보다 먼저 적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것이 전쟁과 분쟁,점령의 가장 악한 면인지도 모른다.

[부산일보 2006-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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