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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국 2006-03-14 14:06:11 | 조회 : 6555
제      목  신의 것, 인간의 것
신의 것, 인간의 것


지루하게 달리던 차가 산모퉁이를 돌아서자 누군가 탄성을 질렀다. 대개 졸던 승객들은 깨어나 창에 달라붙었다. 산 아래 펼쳐진 풍경은 아름다웠다. 푸른 언덕들이 파동처럼 부드럽게 번져나가고,거울 같은 강물과 아침 안개가 굽이굽이 감돌았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서있는 나무들은 제각기 전설 속 생명의 나무였다. 잠이 덜 깨어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가 천국입니다." 운전사가 씩 웃으며 말했다. 바로 거기가 그의 고향이라 했다.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신이 지상에 만들어주신 모든 천국은 반드시 인간들이 파괴해 버리지요." 파괴된 천국,그곳은 카슈미르이다.

고행에 지친 인도의 수행자들은 카슈미르로 갔다고 한다. 카슈미르는 히말라야에서 맑은 물이 흘러내려 한여름에도 시원하고 먼지와 벌레가 적고,먹을 것도 풍부하여 사람이 살기에도,놀기에도, 공부하기에도 좋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카슈미르는 영국 식민제국이 물러가면서 인도와 파키스탄이 갈라질 때 양분되었다. 카슈미르 주민들은 졸지에 어느 한쪽을 택해야 했으며,피난과 이주,그리고 같은 마을 사람들끼리 심지어 친척지간에 학살극이 벌어졌다. 그리고 지금까지 국경을 밀고 당기는 전쟁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벌써 10년이 다 돼가나 내가 인도 쪽 카슈미르에 갔을 때 주도시인 스리나가르 한복판에서 총격전이 있었고,장거리 버스는 한밤중에 까마득한 벼랑길을 불도 켜지 않고 더듬어갔다. 불을 켰다가는 대포알이 날아올 수도 있다고 했다. 승객들이 다들 차에서 내려 숨을 죽이고 있기도 했는데,쿵쿵 대포 소리가 들렸다.

지금 내 앞에서는 사진 한 장이 있다. 올 가을 지진에 집을 잃은 파키스탄 카슈미르의 한 가족이,담요를 둘러쓰고 이 겨울을 어떻게 날까 시름이 젖어 있는 모습이다. 슬픈 역사를 가진 사람들에게 또 슬픈 일이 겹쳤다. 파키스탄 쪽이니 이 가족이 무슬림이라고 짐작한다면,이들이 믿는 그 위대한 신이 왜 이런 혹독한 시련을 거듭 내리시는 걸까. 신의 섭리를 어찌 알겠나. 이들이 신앙의 힘으로 다시 이겨내리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나 자신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모든 불행이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이 만드는 불행도 있다. 자연재해인 카슈미르의 지진으로 파키스탄 쪽에서만 4만3천명이 죽었다는데,이라크 전쟁으로 죽은 민간인은 미국의 집계로만 3만명이다. 자연재해는 어쩔 수 없다 해도,전쟁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실책으로 벌여서는 안 되는 일이다. 미국 대통령 부시는 이라크 전쟁이 실책이었다고 드디어 토로했다. 과연 실책이 아닌 전쟁이 있을까? 나는 전쟁만큼은 인간이 만든 불행이요 재앙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신도 그것을 막지 못하는 것이다.

자연 재해 또한 그 피해가 커지는 이유는 가난 때문이다. 허술한 건축,경보와 대비의 미비,의약품과 식량품 공급 부족 등. 그건 또 인간의 책임이다. 지구를 수백 번이나 폭파해버릴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진 인류는 정작 자기가 능력을 발휘할 분야에 대해서는 무책임하기 그지없다. 따지고 보면 신이 이 세상을 창조하고 개입한다 해도,세상이 이토록 슬픈 건 신의 탓이라기보다는 아무래도 인간의 탓인 것 같다.

카슈미르의 역사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과거 식민지였던 이른바 제3세계의 대부분이 아직까지 전쟁과 가난이라는 짐을 지고 있다. 쓰나미가 났을 때 우리나라 종교인 중에 피해지역이 자기와 다른 신(우상)을 섬기기 때문에 벌을 받았다는 이가 있는데,무엇보다 역사적으로 무지한 발언이었다. 전쟁과 가난은 그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의 문제가 그리로 떠맡겨졌을 뿐이다. 그것은 인류 공통의 과제이다.

역술인들에 따르면 내년은 개 중에서도 재앙을 상징하는 붉은 개의 해라 변고가 많으리라 한다. 나는 신을 잘 모르지만,신이 하실 수 있는 일은 신께 맡긴다. 그리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인간이 하자고,인간을 향해 기도하고 싶다.

[부산일보 2005/12/17 0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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