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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2009-11-26 11:44:47 | 조회 : 3318
제      목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 책읽는 사람(독서인) 이야기

다들 세상이 참 좁다고 말한다.
언젠가 멀리 떨어진 유럽의 한 복판에서 평소 자주 만나던 분을 약속도 하지 않았는데 만났던 경험이 있다. 참 세상이 좁구나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책을 읽노라면 정말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분이 아주 예전에도 계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마치 마주 얼굴을 맞댄 듯한 느낌이 든다. 그렇게 펼쳐지는 책 속의 세상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공간과 같이 친근하면서도 새로운 다른 차원의 세상이다. 복잡한 지하철에서도 손안에 든 책 속에 빠지면  마치 옷장을 열고 ‘나르니아(narnia)’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처럼 무한한 세계가 펼쳐진다.  이것은 좁아진 지구촌이라는 공간을 무한히 확장하여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다. “좁은 세상, 넓게 삽시다”라는 말로 ‘나의 독서 이야기’를 연다.

늘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아 “왜 그렇게 책을 많이 읽느냐”는 얘기를 흔히 듣는다.  나에게 있어 그 이유는 무한히 넓은(시간이나 공간에서) 세계에 대한 호기심 때문일 것이다. 어려서 1960년대의 우리나라의 상황이 그러하였듯이 요즘처럼 즐기는 그런 재미있는 놀이가 별로 없었고 유원지로 놀러갈  여유도 없던 1인당 GNP 100달러 시대의 ‘헝그리 대한민국’의 시절이었다. 유일하게 답답한 세상에 트여 있는 공간이라면 책을 읽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이었다. 지금은 기억하는 분이 거의 없지만 육영수여사가 만든 사회봉사단체인 ‘양지회’에서 운영하던 마을 도서관에서 책을 마음껏 읽은 기억이 난다. 당시 ‘니벨룽겐의 반지’(지금은 ‘니벨룽의 반지’라고 한다)를 비롯한 많은 책들을 접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 기억이 난다. 그 후 용산중학교에 진학하였는데 용산중학교는 도서관을 고등학교와 같이 쓰고 있었고 개가식이라서 서가에서 마음대로 책을 골라서 읽을 수 있어 더 바랄 것이 없었다. 그렇게 취미를 들인 독서는 기본적인 양적 팽창을 시작하여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또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한자로 가득 차고 한글은 토씨만 보이는 신문(동아일보)을 보며 아는 한자와 모르는 한자 사이를 추측으로 메우며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여 나갔던 기억도 흥미로왔다. 특히 당시 연재되었던 김광주 선생(아들이 김훈이다)의 ’비호‘(동아일보에 1967년부터 연재되었던 소설로 원래는 심기운의 ’천궐비‘였는데 번안하여 실린 것이었다)를 보며 가슴 졸이기도 하고 통쾌하기도 하였다.

우리가 느끼고 인식하는 세계는 3차원의 공간이며 시간을 더하면 4차원의 시공간이 된다. 그리고 내가 현재 어디에 있는가하는 것은 위도와 경도 그리고 고도와 시간을 정하면 하나의 확정된 시공간이 된다. 마치 007 영화를 볼 때 우주의 먼 곳에서 지구를 보여주다가 급격히 줌인하여 좁아지는 흐름의 끝에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인물로 시야를 좁히는 역동적인 화면이 있다. 그처럼 존재로서의 인간은 이러한 4개의 좌표를 설정하면 한정된 시공간으로 존재가 확정된다. 나는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는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 현존 위치 확인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이러한 좌표를 찾아가는 여정이 바로 독서의 과정이다. 광대한 우주에서 현재의 나를 찾는 과정 바로 그것이었다.

책을 읽는 과정은 흔히 접하는 닥치는 대로 읽는 마구잡이 독서와 일정한 흐름에 실어 책을 읽는 체계적 독서가 있다.  나름대로 주관이 뚜렷이 서고 위에서 말한 좌표를 확인하는(경지에 도달한) 시점에 이르기까지는 바른 길로 이끌어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옛사람 식으로 말하면 이끌어주는 ‘스승’이 있고 같은 길을 가는‘도반(道伴)’이 있으며 바른‘경전(經典)’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체계적 독서를 하는데 필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그 경지에 도달한다면 그 다음은 이러한 스승과 도반과 경전으로부터 자유롭게 새로운 세계를 탐구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달을 보았다면 더 이상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지월록:脂月錄)은 군더더기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자연인(自然人: Naturkind)으로서 새롭게 인식한 세계로 나아가는 길에 서게 된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자기계발과 경영에 대한 책을 읽는 열풍이 한창이지만 원래 독서의 기본은 인문학이며 그 중에서도 전통적인 것은  문사철(文史哲)로 말하는 문학과 역사 그리고 철학이다. 문사철 중에서도 고전은 고리타분한 점이 있지만 수백년에서 수천년의 생명력을 이어가는 데에는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생명력을 가지는 그 원천으로서 가치를 지니는 면이 있다. 그 고전들은 당대에는 당시의 낡은 사고의 틀을 깨는 혁신적인 책이었던 것이다.

고전에 못지않게 어쩌면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재와 미래에 대한 전망이다. 이것을 소화하는데 가장 중요한 길잡이가 되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일간 신문의 주말 판에 실리는 서평란이다. 몇 페이지에 걸쳐 상세하게 국내외의 신간에 대한 소개와 해설이 실리는데, 잘 살펴보면 당대와 다가올 시대에 대한 성찰과 전망을 얻을 수 있다. 해당분야의 전문기자와 전문가들의 기고로 실린 소개와 해설들은 상당한 내공이 실린 통찰력 있는 글들이기에 읽다 보면 그 분야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이다. 각 분야에서 기존의 인식을 바꾸는 역작이라면 거의 빠짐없이 소개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 하나 독서의 중요한 즐거움 중의 하나는 새로운 세계를 이해하는 도구가 되는 외국어 또는 제2외국어이다. 각 나라의 언어에는 그 언어 사용자의 정신세계와 세계관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한문을 공부하였다면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가 담고 있는 무한한 우주와 유한한 인간의 삶의 대비를 통한 당송팔대가들의 인식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스페인어를 공부한다면 가르시아 로르까의 몽환적인 시를 통해 스페인사의 역동적인 기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베트남어를 공부한다면 응웬주(阮攸)의 시에 나타난 유려함을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외국어에는 그 사람들의 생활과 사고방식 그리고 세계관이 총체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우리와 다른 사람들의 사고 방식이 존재함을 통해 무엇이 우리의 고유한 문화이고 무엇이 다른가를 인식하는 창이 된다. 이른바 남을 통해 나를 알 수 있다는 얘기이다.

모든 사람은 책에 대해 독특한 경험과 느낌을 가질 것이다. 나 또한 책을 읽으며 무릎을 치는 경탄을 느낀 적이 없지 않다. 그런 계기를 나에게 제공한 책은 1977년 무렵 읽은 라인홀드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Moral man and immoral society)’이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이른바 이광수의 ‘민족개조론’ 등의 책들이 주장하는 허구를 깨고 사회와 구조에 대한 인식을 넓히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최인훈의 ‘태풍’과 ‘가면고’도 흥미로운 책이었다. ‘태풍’은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이후에 이르는 시대를 전혀 다른 감각을 통해 한국근대사를 고찰한 소설이다. 그러나 진부한 방식이 아니고 이른바 ‘아나그람(anagram: 철자 바꾸기)'을 통해 전도한 이름만으로도 새로운 느낌을 받게 해준 소설이다. 예를 들어 한국은 애로크(Aerok:코리아의 영문을 뒤집어 표기)로 일본은 나파유(Napaj:저팬의 영문을 뒤집어서)로 표기하며 주인공의 이름은 오토메나크(Otomenak: 창씨개명한 가네모토를 뒤집은 이름) 등을 통해 기존의 한글로 표기했을 때의 선입감을 지우고 먼 나라 이야기처럼 개인에 나타난 우리 역사를 표현한 글이어서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쓸 수 있는 점을 보여준 새로운 느낌이었다. ’가면고‘는 꿈속(전생)의 나와 현재의 나 그리고 과거의 나를 통해 삼중적인 구조로 전개해 나가는 글쓴이의 글 솜씨를 볼 수 있는 흥미 있는 소설이다. 모든 이들에게 나름대로 인생의 감명을 주는 책들이 있고 그것은 다 다를 것이다.  

글을 읽는 다는 것은 배움(學)의 길이지만 배움이 넘치지 않기 위해서는 익히는(習)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익힘으로써 자기 것으로 소화하였을 때 비로소 자신의 삶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남과 다른 의견을 교환(토론)함으로써 자신이 익힌 배움의 장단점을 알게 되고 상대적으로 데이터베이스에 자리 매김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알게 된 지식의 근원을 이해한다면 더 깊이 있는 통찰력을 가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를 휩쓸었던 신유학(주자학)이 실은 과거의 공자와 맹자의 유학과는 전혀 다른 형이상학이고, 중원을 빼앗기고 남송으로 축소된 중국인들이 정통성을 주장하고자하는 배경을 담아 변형시킨 철학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난 다음에도 그렇게 주자학에 목을 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책을 읽을 때 중요한 점의 하나는 텍스트(text)라기 보다는 오히려 콘텍스트(context: 맥락)일 것이다. 아무리 즐거운 노래라도 장례식장에서 부르면 결례가 되듯이 모든 지식은 적절한 자리(포지셔닝)가 있는 법이다. 다시 조선시대 선인들의 배움을 돌이켜 보면 텍스트에 빠져 콘텍스트를 몰라 원전을 오역/오해하였던 부분이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모든 지식은 그 바탕이 되는  출전이 있고 시대에 따른 해석의 변화가 있고 현재 당대에서 적절한 자리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이해한다면 올바른 이해가 되고 통찰력이 될 것이다.

참으로 독서란 타인과의 대화이며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책을 통해 옛사람을 만날 수 있고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 조선 최대의 저술가이며 지식인인 다산 정약용은 생전에 만난 적은 없지만 책을 통해 성호 이익을 만나 사승을 잇고 자신의 생각과 철학의 근본으로 삼은 것을 본다면 좋은 책은 시대와 공간을 넘어 좋은 인연을 이어주는 삶의 길이다.  그래서 ‘배우고 때로 익히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하였던 공자의 말처럼 늘 즐겁게 현실을 살아가는(Carpe diem) 독서인이 될 것을 다시 한번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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