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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수전 2010-07-30 13:53:18 | 조회 : 3024
제      목  '천염예덕'의 도그마 ('자아의 타자화' 비극)
동몽선습(童蒙先習)은 조선 명종대에 살았던 박세무(1487-1554)가 지었던 조선시대의 학문에 대한 입문서이다. 천자문을 뗀 다음 바로 익히던 교과서였으며 임금님과 신하들이 학문을 토론하던 경연(經筵)에서도 토론의 대상이 되었으며 왕세자를 교육하는 세자시강원에서도 강론되었던 조선시대의 핵심적인 교과서이자 세계관의 중요한 출발점이었던 책이다. 널리 알려지고 읽힌 지 100년이 지날 무렵 우암 송시열이 발문을 써 추천하였고 영조 임금은 손수 서문을 써 권장하였다. 따라서 동몽선습은 조선 전기에서 후기에 이르기까지 불변의 진리이며 인간의 마땅한 도리로 여겨졌던 책이었다.

하늘과 땅 사이의 만물의 무리 중에서 오직 사람만이 가장 귀한데, 사람이 귀한 까닭은 오륜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맹자가 말하기를 “아버지와 자식은 친함이 있고, 임금과 신하는 의리가 있고, 남편과 아내는 분별이 있고, 어른과 아이는 차례가 있고  벗 사이에는 믿음이 있다“ 했으니 사람이 되어 이 다섯 가지 도리가 있음을 알지 못한다면 금수와 다름이 없다(人而不知 有五常 則其違禽獸不遠矣).

이는 <동몽선습>에 영조대왕의 서문에 이어 바로 나오는 맨 처음 실린 구절이다.
조선시대의 ‘진리’였으며 동서고금을 통 털어 인간과 문명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었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 잣대를 서구와 접촉하였을 때도 들이대었다. 이른바 조선 사람이 일본에 통신사로 갔을 때나 미국에 처음 공사/영사로 부임하였을 때 보았던 서구 문명에 대해서도 그렇게 ‘진리’가 통하리라 믿었다.
그들이 보여주는 서구의 근대적 문물과 막 꽃을 피운 전기/전등 마천루 등에 대해서도, 그들을 삼강 오륜이 없어 금수와 다를 바 없는 문명화되지 않은 야만인이라 치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문화적 경제적 침투에 대해서도 조선 사람들은 당당하게 ‘위정 척사(爲正 斥邪)’를 외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에 사는 어느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과연 무엇이 문제였을까?
어떻게 ‘진리’가 ‘구닥다리’로 과거의 유물로 전락하였을까?

다시 동몽선습으로 돌아가보면
“천염예덕(天厭 穢德)하여 대명(大明)이 중천(中天)하여 성계신승(聖繼神承)하시니 어천만년(於千萬年)이로다. 오호(嗚呼)라 삼강오상지도(三綱五常之道)는 여천지상종시(與天地相終始)하니...”(하늘이 오랑캐의 누추한 덕을 싫어 하여, 명나라가 천명을 받고, 성자 신손의 뒤를 이어 나오고 있으니 천만년 무궁한 번영을 누리리로다. 아아! 삼강오상의 도가 천지와 더불어 운명을 같이 한다...)라고 명나라의 등장을 소개한다.
이글에 앞서 나온 내용은 태고시절부터 하상주(夏商周)와 그 뒤를 이은 중국의 여러 왕조를 소개하고 원나라를 오랑캐의 누추한 덕(예덕)이라고 폄하한 뒤에 ‘대명’(大明)이 나타남을 칭송하고 천만년 갈 것을 예찬한 글이다. 실제의 명나라는 1368년부터 1644년까지 300년을 못 채운 나라이다. 예덕으로 폄하한 몽골 원제국과 청나라는 역사상 화려한 면을 가지고 있었다.  몽골 울루스라고 하는 몽골의 전성기 판도는 서쪽의 러시아에 위치한 킵착 한국의 수도 사라이에서 동쪽의 대도(지금의 북경)에 이르기까지 불과 보름의 시간으로 연결하는 당시로서는 놀랄 만큼 빠른 역참 통신망을 갖고 있었으며 가장 화려하게 동과 서를 잇는 무역망을 보장하였던 영광이 있었다. 그리고 청나라는 지금까지도 중국의 드라마에 가장 사랑받는 궁정상을 보여주는 소재가 된다.

<강호풍운정>을 비롯하여 숱한 드라마가 청나라 황실을 무대로 백성을 지극히 사랑하는 황제와 충성스러운 신하들로 짜여지는 그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제국의 면모를 보여주는데 비해, 조선 사람들이 그토록 칭송해 마지 않았던 명나라는 <용문객잔>등의 영화에서 보여지는 바와 같은 환관의 권력독점과 충신의 억울한 죽음, 백성들의 도탄이 난무하는 가장 말세적인 제국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왕조였다.

우암 송시열이 쓴 동몽선습 발문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숭정기원지상횡엄무 양월 일(崇禎紀元之商橫閹茂陽月 日) 즉 숭정기원 경술년 시월 일이라고 써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의종의 연호인 숭정을 썼다. 이러한 관습은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광무연호를 쓸 때까지 계속되었다. 고종 9년인 1872년에 나온 농포문답과 개성에 위치한 숭양서원에 대원군시절 세운 비석에도 <숭정기원후 오임신(崇禎紀元後五壬申)>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의 선비들이 그렇게 흠모하였던 숭정 황제(의종)는 서양의 기술을 채용하고 대포를 만드는 등 다른 명나라 황제에 비해 국정에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이었지만 용렬하고 시기심이 강하여 당시 요동지방에서 청나라의 진공을 저지하고 있던 명장인 원숭환을 참혹하게 죽였으며 결국에는 청태종의 북경포위와 농민반란군인 이자성의 북경 진공이라는 내우외환을 당하여 북경 경산에서 스스로 목숨을 버린 황제였다.

그러나 이 문제는 결국 조선 사람들에게 정체성을 묻는 계기가 된다. 이미 망해 버린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의 기원인 숭정을 붙들고 200년이 넘게 그 연호를 쓰면서 천염예덕이라 하여 스스로를 오랑캐로 비하할 뿐 아니라 조상들마저 욕되게 하는 황당함이 오히려 정상적인 것으로 통용된 것은 본말전도의 극치라 아니할 수 없다.
고구려에서 고려에 이르기까지 고분벽화에 태양에 삼족오를 그려 고구려(고려)가 천하의 중심임을 당당하게 선포하였던 전통에 반하여, 스스로를 중국(중화)의 변방인 오랑캐이나 중화를 사모하고 흠모하는 소중화로 자처하여 중심부를 모방하는 주변부임을 자랑스러워 하는 가치관의 전도(顚倒)는 그 연유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과 조선의 건국시부터 시작된 사대(事大)의 표방에 있다고 아니할 수가 없다. 이렇게 자신을 타자화(他者化)하는 모순에 대해 많은 뜻있는 분들이 반성과 인식의 전환을 촉구하고 나섰다. 조선 중기의 백호 임제와 임진왜란과 명청교체기의 광해군 그리고 조선 후기의 소현세자와 홍대용, 독립운동기의 백암 박은식 선생이 그러하였다.
고등학생의 필독도서로 지정되었던 홍대용의 의산문답(醫山問答)에 나온 실옹(實翁)과 허자(虛子)의 대화는 박은식의 몽배금태조(夢拜金太祖)의 금태조와 무치생(無恥生)의 대화와 근본 취지는 비슷하다. 사대주의에 중독된 조선 사람들의 허위의식을 깨고 냉철하고 주체적인 사고로 현실을 직시하고 실사구시의 방책을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의산문답에 나온 얘기가 지동설이나 지구자전설 같은 자연과학적인 얘기라 할 지라도 그것은 당시의 유학이 실제의 세계를 설명하는 데 취약한 부분을 드러내기 위한 방편일 뿐 그 근본취지는 삼강오륜과 천염예덕의 도그마를 깨고  조선사람들의 주체적인 눈으로 현실을 직시하자는 뜻이다.

그러나 조선인들은 아편전쟁으로 상징되는 동아시아의 질서의 변화(西勢東漸)의 의미에 대해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이른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有眼不看 有耳不聽) 상태가 되어 급기야는 일본 제국주의와 단 한 번의 정규전도 갖지 못하고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명청교체기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중립외교정책을 폈던 광해군의 관형향배(觀形向背) 정책을 폐기하고 반청 정책을 펴 스스로 호란(정묘/병자호란)을 자초하였던 인조의 어리석은 정책은 얼마나 많은 백성들을 도탄에 빠지게 하였는가! 지금까지도 한국 사람들이 쓰고 있는 말 중에 당시 청나라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환향녀(還鄕女)에서 파생된 화냥년이란 말에 그 자취가 묻어 있다.

최근에 논란이 된 청태종의 강압에 의해 세워졌다고 알려진 <삼전도비>의 제자리 찾기 등을 보면서 당시에 풀지 못했던 문제가 현재에도 한국 사람들의 의식을 짓누르는 점을 느낀다. 한국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백범 김구 선생님이 쓴 <나의 소원>에 나오는 ‘문화가 창달하는 아름다운 나라’를 상기하면서 한류로 상징되는 소프트파워의 성장을 보면서 이제는 한국 사람들도 보다 스스로의 전통을 자랑스러워 하는 ‘고구려에서 고려에 이르는 역사’를 바로 보면서 ‘천염예덕’을 벗어나 버릴 때가 되었다고 느낀다. 그런다면 삼족오 문양이 달리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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