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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수전 2012-07-26 22:06:20 | 조회 : 1813
제      목  2011년 11월 22일 그 날은 정말 을씨년스러운 날이었다
지금부터 100년전인 고종 46년 대한 광무 9년(1905년) 을사년 11월 21일 고종실록에 실린 글이다. 바로 전주인 1905년 11월 17일 을사조약(을사늑약)이 외부대신 박제순과 일본 특명전권공사 하야시 곤노스께 간에 조인되었다. 이에 대해 정2품 박기양(朴箕陽)이 올린 상소이다.
“신은 근년 이래로 병상에 누워있었으므로 집 밖의 일을 알지 못합니다만, 며칠 사이에 항간에 돌아가는 말을 대략 들어보니 일본 공사(日本公使)가 조약을 새로 체결하는 문제를 가지고 정부에서 모임을 열고 갖가지로 협박했는데도 아! 저 주무대신 박제순(朴齊純)(외부 대신)은 외국인과 한통이 되어 외부(外部)의 인장을 가지고 들어가 상호 조인을 해서 넘겨주었는데 참정은 다른 곳에다 구속해두어서 전혀 보지도 알지도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로 말하면 세가 대족(世家大族)으로서 각별한 은혜를 받고 벼슬이 대신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런데도 보답할 생각은 하지 않고 한밤중에 폐하의 재가도 받지 않고 여론도 들어보지 않고서 위협을 두려워하고 관작을 탐내면서 곧 500여 년을 내려온 조종(祖宗)의 위업과 3,000여 리 강토와 백성들을 두 손으로 받들어 외국인에게 넘겨주고서도 조금도 어렵게 여기거나 망설이는 빛이 없습니다.
예로부터 난신적자(乱臣賊子)가 어느 시대엔들 있었지만 어찌 이와 같은 역적이 있었겠습니까? 대체로 우리나라에 사는 사람치고 누군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지 않겠습니까만 신은 불행히도 이 역적과 한집안이므로 굴복한 수치감이 더욱 남들보다 곱절이나 심합니다. 다른 대신(大臣)들로 말하더라도 힘껏 항거할 생각은 하지 않고 모두 좋다는 서명을 하였으니 그 마음을 들여다보면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은 것입니다만, 주무 대신에 대해서는 더욱더 통절한 느낌이 듭니다. 때문에 이처럼 감히 신하의 명분을 어기면 처단된다는 것도 무릅쓰고 성난 소리로 호소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밝으신 성상께서는 속히 분발해서 분연히 결단하여 이 매국 역적들을 한순간도 지체하지 말고 전형(典刑)을 분명히 바로잡으소서. 다시 칙령(勅令)으로 외부 대신(外部大臣)을 체차(遞差)하여 사유를 밝히고 엄하게 배척하여 허락하지 않는다면 위태롭던 것이 안정되고 망하던 것이 보존될 것이니 안으로는 온 나라의 신하와 백성들, 밖으로는 천하의 각 나라들이 모두 폐하의 마음이 있는 곳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조약을 바로잡는 법은 정부에서 폐하에게 아뢰고 폐하는 정부에 물어서 의논한 내용이 일치를 보게 된 다음에야 외부가 날인하여야 신의를 이룬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것은 폐하가 뜻을 말하지 않았고 참정이 응하지 않았으며 단지 역신이 가지고 있는 인장을 억지로 빼앗아 갔으므로 신뢰할 만한 규식을 갖춘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도로 찾아다 지워서 없애버릴 도리가 있는 것이지만 존망에 관계되고 시일이 급하니 특별히 널리 헤아려 진청(陳請)하도록 허락해 주소서.”
당시에도 을사5적들(외부대신 박제순. 내부대신 이지용, 군부대신 이근택, 학부대신 이완용,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은 당시 내각의 8 대신중의 5인이었지만 일본이 강압하여 내각에 입각시킨 것이 아니었고 고종이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남은 3 대신 중 끝까지 반대를 굽히지 않았던 분은 참정대신 한규설 뿐이었다. 을사조약의 내용은 외교권 포기와 통감부 설치라는 이른바 ‘보호국’으로 대한제국이 격하되어 한일 강제병합으로 가는 과정이었다. 을사조약의 과정은 고종 황제의 동의를 받지 않았기에 인정받을 수 없는 엉터리 조약이라는 의견도 있다. 을사조약의 본문에 보면 박제순과 하야시는 “각기 자기 나라 정부의 상당한 위임을 받아 본 협약에 기명 조인하다”라는 문구가 있지만 박제순은 고종의 위임장도 갖지 않았으며 참정대신(지금의 국무총리 격) 한규설이 반대하였으며 고종도 조약 체결을 비준하지 않았기 때문에 엉터리 조약이라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당시 내각 대신 8인중 7인(탁지부대신 민영기와 궁내부 대신 이재극은 추후 찬성으로 돌아섰다)의 찬성이 있었기에 일본이 대한제국을 병탄하는 빌미를 만들어 주었다.
정말 어느 시대인들 나라를 팔아먹는 난신적자(乱臣賊子)가 없었겠는가.
2011년 11월 22일 대한민국 국회를 통과한 FTA 법안과 14개 부수 법안으로 인해, 대한민국은 군사주권이 미국에 넘어가 있는 상태에 더하여(군사 주권의 핵심은 전시작전권) 경제 주권과 사법 주권을 침해 당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많아진 것이다. 이미 미국과 FTA와 투자자소송제도(ISD)를 체결한 멕시코와 볼리비아 등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남의 일이 결코 아니다. 환경과 위생 뿐 아니라 중소상인과 서민의 삶을 위하기에 앞서 먼저 미국 투자자와 유럽 투자자(한EU FTA는 미국에게 준 것과 같은 최혜국대우를 자동적으로 유럽에 줄수 있게 되어 있다)의 이익이 혹시라도 침해 당하지 않는지 걱정하여야 하고 국회는 입법 과정에서부터 제동이 걸리게 되어 있다. 그리고 2011년 11월 22일 한미 FTA 법안과 함께 의약품 특허-허가 연계제도를 삽입한 약사법 개정안도 통과됨으로써 한국의 제약산업은 미래의 성장동력에 심대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아마도 10년간 최소 1조원 이상의 손실이 추정되는 상황이다. 실로 삼성의 이건희 회장도 늘 걱정한다는 대한민국의 ‘미래의 먹거리’ 중 가장 유망한 BT(바이오 테크놀로지)의 핵심인 제약산업의 미래가 잿빛으로 변하는 시점이다. 실제로 의약품의 개발은 복제 약품부터 시작하는 것이 순서인데 이제 그 복제약을 개발할 때 의약품 특허-허가 연계제도로 인해 손발이 묶이게 되었다. 안 그래도 개정된 약가 인하제도로 인해 제약산업에 연계 종사하는 8만여명의 사람 중 2만명의 사람들이 해고 정리되는 중에 있는 와중에 한미 FTA는 마지막 결정타를 먹이고야 말았다. 지난 11월 18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사상 처음으로 국내 제약업계 종사자 1만여명이 모여 ‘전국 제약인 생존 투쟁 총궐기 대회’를 연 바 있다. 이것은 남의 얘기가 아니고 곧 약가 인상과 국민부담 인상으로 귀결될 것이기에 ‘강 건너 불’이 결코 아닌 것이다.
미국의 동맹국가중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호주의 경우 2005년 체결한 미국과의 FTA 로 인해 약가는 오르고 국내 제약산업의 기반은 허물어지는 결과를 보인 바 있었다. 또한 FTA 로 인한 분쟁이 발생할 때 처리하는 국제 중재 기구는 미국의 결정적 영향 하에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상식이다.
1905년 11월 을사5적은 일본군 대장 하세가와의 무력 위협 하에 조인에 동의했다지만 2011년 11월 대한민국의 한나라당 의원들은 어떤 위협이나 회유를 받았는지 묻고 싶은 심정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노원구의 현역의원인 권영진 의원과 홍정욱 의원이 차마 투표하지 못하고 투표에 불참하였다는 점일 것이다. 역사는 반드시 2011년 11월 22일의 참상을 기록할 것이다. 2011년 11월 22일 하늘은 찌푸리고 있었고 가는 빗줄기가 날려 정말 을씨년스러운 날씨였었다. ‘을씨년스럽다’는 표현은 1905년 11월 17일 ‘을사’조약으로부터 유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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