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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2007-04-23 17:40:30 | 조회 : 4605
제      목  천재가 다녀가도 모르는 사회[세계일보2007.04.19]
[문화산책]천재가 다녀가도 모르는 사회

앙굴렘만화축제를 참관하러 프랑스에 다녀온 적이 있다. 9년 전이었다. 그때 장 클로드 갈이라는 전설적인 만화가를 알게 돼 그의 기념관에도 갔었다. 그 외에도 만화박물관과 만화가들의 기념관이 곳곳에 많이 있었다. 그곳에는 만화가들의 일생을 소개하는 자료들과 함께 그가 평생에 걸쳐 이룬 작품의 원화들이 전시돼 있다.
만화축제가 열리는 앙굴렘에는 세계적인 만화학교가 있고 전 세계에서 유학온 수많은 만화가 지망생들이 공부하고 있었다. 장 클로드 갈의 ‘죽음의 행군’을 포함해서 ‘아스트릭스’와 ‘땡땡’ 시리즈 등 프랑스 만화가 풍성하게 발전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만화를 제9의 예술이라고 한다. 아홉 번째 예술 장르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러한 정의도 우리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통하지 않았다. 1970년대에 발표한 수많은 만화작품들이 폭력성과 선정성이란 검열당국이 붙인 딱지에 의해 삭제되고 잘린 예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이다. 뿐인가, 매년 5월 5일 어린이날이면 동대문운동장에서 거행되던 ‘만화 화형식’, 만화가들은 TV로 전국에 방영되던 그 장면을 피해 가족 나들이를 나섰다고 한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고우영이란 걸출한 만화가가 나왔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고우영은 기존의 세계에서 출발해 그 세계를 부수고 자신만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했다.” ‘고우영 삼국지’를 서사 텍스트로 분석해 학술비평을 발표한 문학평론가 정호웅 교수의 말이다. 누군들 기존의 세계에서 출발하거나 기대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 기존의 세계를 부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자신이 딛고 선 땅이기 때문이다. 다만 손톱 끝만큼이라도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내밀 수 있기를 겨우 꿈꿀 뿐이다. 그런데 간혹 자신이 딛고 선 세계를 뒤집고 부수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이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일러 천재라 부른다.

내가 알기로 우리 예술사를 통틀어 만화가 고우영 선생만 한 천재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몇 개의 선만으로 형상을 이루고 감정을 이끌어내는 힘, 독자를 몰입하게 하는 뛰어난 연출력과 화면 구성 능력, 텍스트에 대한 전혀 새로운 해석, 엉뚱하다고 할 수도 있을 만큼 과감한 자기만의 시각, 그래서 김정환 시인은 고우영의 작품을 “문학보다 더 문학적이고, 미술보다 더 미술적이고, 영화보다 더 영화적”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런데 그분의 원화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그분의 기념관은 고사하고, 그분이 평생에 걸쳐 이룬 작품의 원형조차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다. 신문 연재 시 신문사에 넘겨준 원화를 챙겨준 기자가 하나도 없었고 전작 출판 시 출판사에 넘긴 원화를 챙겨서 돌려준 편집자가 없었다는 말이다. 행여 기념으로 기자나 편집자가 개인적으로 소장하거나, 신문사나 출판사가 보관하고 있다면 유족에게 돌려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사용 후 원화를 둘둘 말아서 버렸거나 찢어버렸다면, 참으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야만의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유족의 말을 빌리면 아쉽게도 원화를 찾을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 같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문화적 얼굴이다. 적어도 지난 수십 년 동안의 얼굴이다.

고우영 선생만이 아니다. 돌아보면 우리 문화·예술계에는 자신의 작품에 존재를 바친 천재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분들 대부분은 제대로 평가받지도 상찬(賞讚)받지도 못했다. 평가받고 상찬받자고 하는 일이 아닌지는 모른다. 그러나 때로 주목받고 싶지 않은 사람이 또 누가 있겠는가. 5월 5일이 다가오고 있다. 그날을 악몽으로 기억하는 만화가들을 위해 올해 어린이날은 전국적으로 만화축제라도 한바탕 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강태형 시인·문학동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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